문재인 대통령 출범 이후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떠들면 뭐하나. 정작 들어가야 할 응시자는 낙방하고 힘센 자의 청탁이 있어야 합격한다면, 그래서 광주의 아들과 청년들이 울고 있다면 이건 분명코 정상이 아니다.

그러한 비정상적인 채용이, 그것도 광주의 한 공기업에 일어났다면 슬프디 슬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지난 11일 광주도시철도공사에서 실시한 무기계약직 면접에 응시했다가 떨어진 530여명은 왜 자신이 낙방의 고배를 마셨는지 무척 씁쓸했다.

“환승역은 어떠냐” “지하철에 대해 아는 게 뭐냐”는 면접위원들로부터 그저 그런 상식적인 질문을 받고 답변을 잘 했다고 나름 생각했는데 불합격됐다는 것이다. 도대체 어떤 잣대로 면접 기준과 원칙이 적용했는지 알 길이 없고, 또 다시 취업준비를 해야 하나 생각하니 가슴에 응어리가 선 듯 답답하다. 절망감에 괜시리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공개채용이라는 미명하에, 그것도 지방공기업의 면접시험을 치른 응시자들마저 납득할 수 없다는 것 자체는 분명히 짚어 넘어가야 한다. 그리고 면접시험 절차와 방식이 잘못됐다면 광주도시철도공사 차원의 우선적 해명이 있어야 한다는 게 광주시민의 입장이다.

여기에는 응시자들의 능력 보다는 힘센 자들의 청탁에 의해 합격여부가 판가름 났다는 데서다.
실제로 광주도시철도는 최근 무기계약직 35명을 뽑는데 563명이 응시했고, 특히 역무직의 경우 12명 모집에 412명이 몰려 34대1의 경쟁률을 보였다. 대학생들의 취업이 하늘의 별따기와 다름없고, 산업구조가 취약한 광주인지라 일자리를 얻기 위해 경쟁이 치열한 것은 당연지사다.

문제는 면접만으로 시험을 치른다 하니 응시자 가족들과 친지들로서는 있는 빽, 없는 빽을 다 동원해서 도시철도공사 김성호 사장을 비롯 임원과 간부들에게 줄을 대기 시작했다. 임직원들이 청탁성 전화를 받기가 겁이 날 정도였다.

자식의 취업을 위해 할 수만 있다면 이른바, “‘빽 동원’이 대수랴”며 가볍게 여겼을지 모르지만 김영란법 이후 사회적 분위기가 급변한 상황에서 청탁이나 외부압력은 사회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간과한 게 잘못이다.

어찌보면 이번 광주도시철도의 정규직 공개채용은 그러한 청탁을 이미 2년 전에 예고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윤장현 광주시장이 광주도시철도 위탁회사 직원 330명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 후 정규직으로 해주겠다고 하면서 자식 취업에 눈독을 들인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후 자연 감원되거나 결원이 된 37명 가운데 2명을 제외한 35명을 이번에 채용한 뒤 오는 9월1일자로 정규직 전환키로 방침을 세워놨으니 취업문을 뚫기 어려운 상황에서 시험 한 번에, 그것도 평생을 보장받는 정규직이 된다하니 어느 누구라도 솔깃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광주도시철도는 내부적인 시험 절차와 원칙을 무시하고 사장 독단으로 면접시험을 치르는 바람에 절차적 정당성과 공정성, 객관성을 담보하지 못한 게 화근이 된 셈이다.

과거와는 달리 인크루트 같은 전문기관에 의뢰하지 않았고, 공신력 있는 기관 및 단체들로 부터 면접위원을 의뢰하지 않았다. 이런 상태에서, 기본 소양과목이나 인적성 검사 등 최소한의 여과장치도 없이 서류접수자 모두를 합격시켜 면접위원 1개조가 2백여명을 한꺼번에 시험을 치르도록 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청탁과 외부 압력을 자연스럽게 불러들이는 꼴이 되다보니 “특정인이 내정됐다”는 소문이 입살에 오르내렸다. 자연스레 여론의 관심이 집중되기에 이른다.
진실여부를 떠나 이때부터 ‘윗선 개입 인사’ ‘보은 인사’라는 얘기가 떠돌았다. 정치권과 시의회, 광주시, 심지어 조합장에 이르기 까지 광주에서는 꽤나 잘나가는 사람들로부터 청탁성 민원이 쇄도하기 시작했다.

특히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는 속담처럼 합격자가 발표되면서 엉뚱하고 생뚱맞은 사람이 합격하고, 정작 들어가야 할 응시자는 떨어지고 말았으니 사회적 비판여론이 더욱 높아진 것은 이러한 연장선상에서다.

그렇다면 도시철도 김 사장은 왜 외부 압력과 청탁에 시달릴 줄 뻔히 알면서도 최소한의 여과장치를 마련하지 않은 채 면접시험만을 그토록 고집했을까.
궁금하다.

도시철도에 밝은 정통한 사람들의 여론을 종합해 분석해보면 첫째 도시철도 공사 김 사장의 태생적 한계를 지적한다. 김 사장은 올해 도시철도 사장 후보로 접수했다가 4위로 떨어진 적이 있다.
하지만 윤 시장이 당시 임원추천회의에서 천거한 사장후보를 낙점하지 않자 다시 사장후보로 접수했고 여기에 특정 인맥이 가세하면서 사장자리에 앉게 된다.
어쨌든 김 사장으로서는 이런 보은에 충성하기 위해 스스로 알아서 일반시민이 들여다보아도 뻔히 냄새가 나는 면접방식을 고집한 것으로 보인다.

둘째는 역대 사장이 인크루트 등 전문기관에 용역을 의뢰해 직원을 뽑았으나 과거 캠프에서 일한 사람을 한명도 채용하지 못하는 바람에 무능력자로 찍힌 바 있다. 이런 사실을 모를 바 없는 김 사장으로서는 괜히 미운털이 박히는 게 부담스럽다 보니 무모하고 어설픈 면접을 치렀던 게 아닌가 싶다.

셋째는 김 사장의 리더십 부재를 꼽을 수 있다. 김 사장은 임원들을 믿지 못하면서 내부절차를 거쳐 올라온 채용안을 모두 취소하고, 그 대신 사장 자신의 입맛대로 면접시험만을 독단적으로 채택했다는 것이다.

넷째는 면접위원을 외부에서 뽑으면서 특정 직업인 변호사와 교수를 각각 3명씩으로 했으나 철도 업무의 특수성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지적이다. 내부 직원도 과거와는 달리 임원급이나 1급 팀장이 아닌 이른바 자신의 말을 잘 듣는 2급 직원으로 대신해 적합성 여부가 도마 위에 올랐다.

다섯째는 역무직의 경우 면접위원 3명씩 2개조로 나눠 같은 응시자 412명을 대상으로 따로따로 면접을 치루는 바람에 평점에 대한 일관성과 형평성을 잃은데다 한정된 시간에 쫓겨 심층면접이 이뤄지지 않았다. 질문 자체도 일반적이어서 변별력이 없었다는게 응시자들의 공통된 불만이다.

따라서 서류접수에서부터 합격자 발표까지, 그것도 정규직을 뽑으면서 최소한의 여과장치나 절차를 생략하고, 사장 독단으로 면접 그 자체만으로 합격여부를 결정하는 것 자체가 특정인을 합격시키기 위한 수순을 밟았다는 게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이쯤에서 혹여 김 사장이 특정인을 뽑기 위해, 그것도 윗선의 지시와 통로를 통해 사전 협의 하에 시험을 치렀다면 결국 이번 시험에 응시한 청년들을 두 번 울리고 죽이는 꼴이 된다. 눈물을 닦아 주기는 커녕 상대적 박탈감을 더욱 안겨준 셈이다.

이번 공개채용이 결국 ‘힘센 자 청탁의 장’으로 전락했다면 이쯤에서 그대로 덮고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
취업 청탁도 김영란법을 위반한 것인 만큼 법적으로 무겁게 다스릴 방법이 없는 지 신중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박병모 기자 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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