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당이 호남에서 예상 외의 열기를 더해 대통령 선거의 예비선거가 이루어지는 듯한 광경이다. 당초 2만여명으로 예상했던 광주, 전남, 제주 지역 현장.투표소 30여곳의 투표 최종 참가자가 6만2,389명으로 집계된 것이다.

이를 두고 국민의 당의 한 당직자는 "정말 눈물 난다"는 말 한 마디로 그 기쁨을 표현했다. 그동안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당은 전국은 물론 호남에서조차 더불어민주당에게 늘 큰폭으로 뒤져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의 당이 처음으로 선택한 이번 호남지역 투표 열기가 일단 분위기를 일신하는 뜨겁게 달아올라 마치 진도 팽목항 앞바다에서 세월호가 선체가 다 떠오른 모습과 비교되는 듯 했다.

더욱이 이날은 비도 내리고 날씨마저 고르지 않은 채 다소 추위까지 겹쳐 투표 참가율에 내심 걱정했지만 이를 불식시킨 자리였다는 자평이다.

박지원 대표는 투표종료 직후 기자들과 만나 "눈물이 날 지경이다. 광주·전남·제주에서 총선 민심이 아직 국민의당에 있다고 했을 때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는데, 오늘 증명됐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이어 "호남에서, 광주·전남에서 국민의당에 거는 기대가 크다"며 "(투표 참가인수는) 문 전 대표에 대한 거부반응을 나타낸 것으로 지난 총선 때처럼 '제발 국민의당 한 번 해봐라'하는 기대를 나타낸 것이다"고 주장했다.

경선 투표에 참여한 주민들은 한 손에는 우산, 다른 손에는 신분증을 쥐고 국민의당 대통령 후보 선출에 참여했다. 국민의당은 광주의 경우 동구청,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 남구장애인복지관, 북구청, 광산구 목련초등학교 등에 현장투표소를 마련했다.

이날 호남 경선은 당원, 비당원 구분없는 완전 국민경선으로 치러져 안철수 후보가 압도적인 표차로 1위를 차지하고 2위는 손학규 후보, 3위는 박주선 후보로 잠정 집계됐다. 호남은 안철수에게 기대를 거는 분위기다.

이날 연설회에서 안철수, 박주선 후보는 민주당 유력 주자인 문재인 전 대표를 집중적으로 비판했다.

안 후보는 “(문 전 대표에게) 한 번 속으면 실수지만 두 번 속으면 바보”라면서 “선거 때만 호남의 지지를 얻으려는 사람을 뽑아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지난 총선 때 민주당은 새누리당이 180석, 200석 갈 것이라면서 국민의당을 분열 세력이라고 했지만 국민의당이 나오자 새누리당의 과반이 무너지고 결국 해체됐다."고 말했다.

안 후보는 "저는 좌절하지 않고 지금까지 달려왔고 국민에 의한 연대만이 오직 승리의 길”이라고 강조했다.

박주선 후보는 “지지율 2%인 후보를 호남이 대통령으로 만들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당선 후 호남 동지들을 탄압한 것도 모자라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준 호남과 당을 깨고 자기 당을 만들었다”며 “당을 깬 중심에는 청와대 권력 2인자인 문재인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호남 탄압의 책임자인 문재인 씨가 ‘전두환 표창’을 자랑스레 내보이며 표를 달라고 하고 있다”면서 “또다시 호남을 들러리로 세워 이용만 하려는 문재인 씨를 저는 단호히 반대한다”고 덧붙였다.

손학규 후보는 연설에서 문 전 대표를 언급하지 않았다. 손 후보는 “IMF 국난의 대한민국이 ‘준비된 선장’ 김대중을 불렀듯 오늘 국난의 대한민국을 위해 ‘다시 준비된 선장’을 불러달라”고 호소했다.

손 후보는 “강진 생활을 통해 호남의 소외와 차별의 한을 몸에 익힌 제가 호남민들과 함께 이 아픔을 고치겠다”면서 이어 “광주 정신으로 기득권과 특권, 반칙으로 가득 찬 패권정치를 끝장내겠다.”고 덧붙였다.

이번 경선은 '사전 선거인단 없는 현장투표'라는 유례를 찾기 어려운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대선·총선처럼 신분증을 가진 19세 이상 국민이면 누구나 사전 등록 없이 현장에 와서 투표할 수 있다.

25일 광주 동구청에서 국민의당 대선후보 경선 현장투표에 참여했던 한 시민은 진짜 대통령선거 투표에 참가라도 하는 듯 비가 내리는 날씨에도 친지 결혼식으로 향하는 길에 자신의 표를 행사했다.

박주선 예비후보의 지역구이기도 한 이곳 투표소에는 오전 한때 지하 1층 민방위교육장 입구에서 모퉁이를 돌아 지상 1층으로 이어지는 계단까지 긴 줄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는 한 현장 투표자는 "누굴 만나러 온 건데 투표를 할 수 있으면 하겠다"며 "국민의당 후보는 셋 다 별로라고 생각하지만, 이길 수 있는 사람이 해야 한다. 일단 생각을 좀 해보려 한다"고 말한 뒤 즉석에서 투표에 참여하기도 했다.

거점투표소인 김대중컨벤션센터에는 50~60대로 보이는 열성 지지자들이 상당수 모습을 드러냈지만, 가족 단위로 찾아와 투표장을 둘러보거나 짝을 이뤄 투표에 참여하는 젊은 남녀도 눈에 띄었다.

이는 ARS투표나 배심원단 등 다른 제도보다 보통·비밀·직접·평등의 민주 선거 4대 원칙에 비교적 더 부합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후보 간 조직 동원이 예상되고 대리 투표를 막을 장치가 사실상 없다는 맹점도 있어 주목받았다.

광주시선거관리위원회는 현재까지 차량대절이나 대리 투표 등 부정행위 없이 순조롭게 투표가 진행된 것으로 보고 있다.

국민의당 광주시당 관계자는 "호응이 적을까 봐 걱정 많이 했는데 자발적 투표자들이 각 투표소로 많이 오고 계신다"며 "살짝 비가 내린 날씨도 투표수 증가에 도움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국민의 당 목포 투표소

국민의당은 호남 당원 비중이 높은 만큼, 광주·전남·제주권역과 전북 투표가 사실상 경선 전체 판세를 좌우할 것으로 예상해 왔다. 당에선 이날 경선 선거인 수가 예상치를 웃돌면서 이후 진행될 전북, 부산, 대구, 경기, 서울 등 경선에도 흥행 동력이 되길 기대하는 눈치다.

국민의당은 내일 전북에서 두 번째 순회경선에 나선다.

당 관계자들은 이 같은 투표 참여 열기가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인 문재인 경선후보에 대한 호남민들의 경계심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대선 본선에서 문 후보가 승리하면 안 된다는 일종의 '문재인 포비아'가 작용했다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아이들 손잡고 어르신들 모시고 오는 시민들의 움직임에서 이번 대선의 또 다른 움직임이 보였다"며 "선거를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남은 6차례 경선에서도 이날과 마찬가지로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현장투표가 가능하다. 첫 경선지의 예상보다 높은 투표 참여 열기에 남은 경선의 흥행을 전망하는 관측도 나온다. 경선의 최종 승자는 현장투표 80%, 여론조사 20%의 합산으로 결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