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의 직업은 ‘전직 대통령(?)’이었다.

30일 오전 10시 30분 사상 첫 전직 대통령의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이 진행된 서울중앙지법 321호 법정.

강부영 영장전담 판사는 심문 개시를 알리며 “피의자 박근혜”에게 “일체의 진술을 하지 않거나 개개의 질문에 대하여 진술을 거부할 수 있으며 이익되는 사실을 진술할 수 있다”고 진술 거부권을 고지했다.

이름과 생년월일, 직업, 주소를 묻고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 속 내용과 부합하는지 확인하는 절차(인정신문)가 이어졌다.

강 판사의 맞은 편 4ｍ 가량 떨어진 피의자석에 앉은 박근혜는 생년월일 ‘1952년 2월 2일’, 직업은 ‘전직 대통령’, 주소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으로 답했다.

이렇게 시작된 국정농단사건의 핵심 피의자 박근혜(65)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는 “주요 혐의가 소명되고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어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이 인정됐다”며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헌법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파면된 지 21일만이다. 박근혜는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 이어 구속된 3번째 전직 대통령이 됐다.

검찰 청사 10층 임시 유치장소에 대기 중이던 박근혜는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에 압송, 수감됐다. 오전 4시 45분께 서울구치소 정문을 통과해 안쪽으로 들어갔다. 검찰 측 차량을 이용해 구치소로 향하는 박근혜는 이동 시까지 청와대 경호실의 경호를 받았다.

서울구치소에는 박근혜의 측근 최순실씨(61)를 비롯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49),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78) 등 국정농단 사건의 공범들이 구속 수감되어 있다.

박근혜는 검찰과 특검 수사를 거치며 433억원(실수수액 298억원) 상당 뇌물수수, 문화계 지원 배제 명단 작성 및 집행 주도 과정서 직권남용, 공무상비밀누설 혐의 등 모두 13가지 혐의를 받았다.

앞서 검찰은 지난 21일 박근혜를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그는 검찰 출석 과정에서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성실하게 조사에 임하겠습니다"라고 짧게 말했다.

조사는 약 14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이후 박근혜는 7시간30분가량 심문 조서를 꼼꼼하게 검토한 뒤 출석 21시간 30분만인 22일 오전 6시55분께 청사를 나왔다. 박근혜는 뇌물수수 등 적용된 혐의를 적극적으로 부인했다.

검찰은 지난 27일 박근혜에게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와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등 13가지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특검 수사 결과를 대부분 수용해 구속영장 청구서에 포함했다.

검찰은 “박근혜 전 대통령은 막강한 대통령 지위와 권한을 이용해 기업으로부터 금품을 수수케 하거나 기업경영 자유를 침해하는 등 권력남용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 중요한 공무상 비밀을 누설하는 등 사안이 매우 중대하다”며 구속영장 청구 이유를 밝혔다.

검찰은 또 “그동안 다수의 증거가 수집되었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부분 범죄혐의에 대해 부인하는 등 향후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근혜는 영장심사를 받는 첫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감수하고 전날 법원에 나와 구속수사 부당함을 주장했다. 출석 과정에서 “세월호 인양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느냐”, “무엇이 송구스러운가” 등 기자들의 질문이 나왔지만 박근혜는 답하지 않고 포토라인을 바로 지났다.

집에서 나올 때는 친박 인사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은 했지만 국민에게는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은 것이다.

검찰은 박근혜 조사를 진행했던 형사8부 한웅재 부장검사, 특수1부 이원석 부장검사 등 검사 6명을 투입해 구속 필요성을 강조했다. 박근혜 측에서는 유영하, 채명성 변호사가 나와 사실관계와 법리를 다퉜다.

박근혜는 전날 오전 10시30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전피의자심문(영장심사)에 출석했다. 영장심사는 오후 7시10분쯤 마무리됐다. 적용된 혐의가 13개에 달하는 만큼 전날 열린 심사는 8시간40분 동안 진행됐다. 이는 1997년 영장심사제도가 생긴 이래 역대 최장 시간 심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최대 20일 이내에 박근혜의 주요 혐의점을 정리해 재판에 넘길 예정이다.

하지만 또 한 번의 고비가 남아 있다. 박근혜가 법원의 구속 결정을 뒤집기 위한 절차를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법원에 구속적부심사를 청구해 구속될 만한 이유가 있는지 다시 한 번 판단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는 의혹 전반을 부인하고 피의자심문(영장심사)에도 직접 출석해 결백을 호소했기 때문에 구속적부심사를 청구해 다시 무죄를 주장할 가능성도 있다.

구속적부심사는 피의자 본인 또는 변호인·배우자·가족 등의 청구를 받아서 구속이 적합한지, 계속 구속할 필요가 있는지 법원이 심사하는 제도다. 검찰은 피의자를 구속하면서 구속적부심사를 청구할 권리가 있다고 알릴 의무가 있다.

법원은 심사를 거쳐 피의자를 석방하라고 명령할 수 있다. 향후 출석을 보증할 보증금을 납입하라는 조건을 내걸 수 있다. 일반적으로 청구가 이유 있다고 인정되면 조건 없이 석방하고, 구속 자체는 타당하지만 증거인멸 염려가 없거나 건강이 좋지 않은 등 참작할 점이 있으면 보증금을 납입하는 조건으로 석방한다.

법원은 구속적부심사 청구를 접수한 시점부터 48시간 이내에 피의자를 심문하고 증거를 조사해서 석방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구속적부심사에서 나온 결정에 또다시 이의를 제기하는 절차는 없다. 만약 기각되면 박 전 대통령은 일단 구속 상태에서 수사를 받아야 하며, 재판에 넘겨진 뒤에는 보석을 청구해서 석방 필요성을 다시 주장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구속적부심사를 통해 피의자가 석방되는 경우가 많지 않다는 게 법조계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박근혜는 구속적부심을 통과하기 어려워 헌재 파면, 영장 구속 결정, 구속적부심 기각 등이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