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뉴스=신안] 서영서 기자 = 우체국 경비근무를 하던 김모(40)씨는 카드 돌려막기로 큰 빚을 지게되자 연로한 부모님께 짐이 된다는 생각에 집을 뛰쳐 나왔다. 그때가 2000년 6월이었다.

그러나 시각장애 5급 판정을 받은 김씨를 받아주는 회사는 어디에도 없었다.

일을 구하지 못하고 10여년을 막노동판을 전전하며 노숙생활을 하던 중 2012년 7월 노숙자 무료급식소에서 직업소개업을 한다는 이모(63)씨를 우연히 만났다.

이씨는 숙식을 제공하는 염전에서 일해 볼 생각이 없냐고 김씨를 꼬드겼다.

노숙생활에 지친 김씨 입장에선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이었다.

김씨는 이씨 손에 이끌려 전남 신안군에 있는 외딴 섬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노숙 생활보다 더한 악몽 같은 시간이 김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재워주고 먹여주고 월급도 준다던 곳은 감옥이었다. 염전 주인 홍모(48)씨는 김씨를 노예 부리듯 했다.

김씨는 그곳에서 지적장애를 안고 있는 채모(48)씨를 만났다.

채씨는 지난 2008년 11월 전남 목포시의 한 직업소개소에서 이씨 등으로부터 식사 대접을 받은 뒤 영문도 모른 채 홍씨에게 팔려왔다.

김씨와 같은 꾐에 넘어가 이미 4년 넘게 강제노역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밤낮으로 염전 일에 홍씨의 집안일까지 해야 했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김씨는 염전 일이 더디다며 각목과 삽으로 맞았다. 채씨 역시 홍씨로부터 지속적인 폭력에 시달렸다.

심지어는 일을 하던 중 발목뼈가 부러진 적이 있었는데, 병원 한번 제대로 가보지 못하고 다리를 절어가며 일을 했다.

탈출을 시도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김씨는 섬에 들어간 지 한 달 뒤인 2012년 8월께 채씨와 함께 탈출을 시도했다.

하지만 외딴 섬에서 빠져나가기란 쉽지 않았고 서너 차례 탈출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때마다 홍씨는 ‘한 번 더 도망치다 걸리면 칼침을 놓겠다’고 협박했다.

계속된 고된 노동에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던 김씨는 서울에 있는 모친에게 구해달라는 편지를 붙이기로 마음 먹었다.

김씨는 홍씨 몰래 ‘섬에 팔려와 도망갈 수 없으니 구출해 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써 품안에 숨겨놓고 다니며 기회를 엿봤다.

그러던 중 지난달 13일 읍내에 이발하러 나온 김씨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우체국에서 모친에게 편지를 보냈다.

수십 년 전에 연락이 끊긴 아들의 편지를 받은 모친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심경이었다.

한달음에 구로경찰서를 찾았고, 경찰에게 편지 내용을 전하며 아들을 찾아달라고 호소했다.

경찰은 즉시 수사팀을 꾸려 편지에 적힌 주소지로 향했다. 염전에서 소금을 살 것처럼 위장해 노역 중이던 김씨를 데리고 나왔다.

하지만 함께 있던 채씨는 스스로 원해서 염전일을 하고 있다고 이야기를 한 탓에 함께 데리고 나올 수 없었다.

경찰은 채씨가 지적장애가 있다는 점을 감안해 채씨의 신원을 조회해본 결과, 2008년 7월 대전에 있는 누나가 실종 신고한 사실을 확인했다.

지난달 28일 수사팀을 다시 내려보내 채씨를 데려왔다.

김씨는 지난달 24일 경찰과 함께 서울로 올라온 뒤 구로경찰서 사무실에서 14년 만에 모친과 상봉했다.

김씨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다시 볼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구출해줘서 감사하다”며 “앞으로 열심히 살겠다”고 말했다.

김씨의 모친도 “죽기 전에 아들을 찾아줘서 고맙다”며 눈물을 보였다.

한중석 구로서 형사과장은 “지금도 외진 섬의 작업장에서 ‘먹여주고 재워준다’는 감언이설에 속아 노동착취를 당하는 사회적 약자가 있을까봐 염려스럽다”면서 “유사한 사실을 알고 있거나 목격시 외면하지 말고 경찰에 신고해달라”고 당부했다.

경찰은 김씨와 채씨를 염전에 팔아 넘긴 직업소개업자 이씨 등 2명과 염전 주인 홍씨를 ‘영리목적 약취유인죄 및 폭행죄’ 혐의로 조만간 사법처리할 방침이다.

한편 경찰은 고용노동부·관할시군 등 관계기관과 합동으로 외딴 섬 등 취약지역에서 일하는 노동자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할 수 있도록 건의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