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후보등록이 시작된 지라 일정상 금요일 저녁과 주말과 휴일인 토요일과 일요일 3일간을 택할 수 밖에 없었겠지만 참신한 인물을 등용한다는 당초의 제도 도입 취지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준비의 치밀성은 물론 제도 운영 자체도 매끄럽지 못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18일 오후 7시 부터 11시30분까지 4시간 반 동안 김대중컨벤션센터 4층에서는 광주 북구갑 숙의배심원단 경선이 치러지고 있었다. 배심원단 일부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20여분 늦게 시작된 북구갑 경선은 일반 유권자 46명, 전문가 그룹 49명 등 모두 95명이 참여했다. 남성 숫자가 여성 보다 2배에 달했다.

하지만 주최측인 국민의당 관계자는 배심원단을 어떻게 구성했고, 총인원, 그리고 참석율이 얼마나 되는지, 배심원단 규모에 관한 아무런 언급도 없이 경선에 들어갔다. 단지 배심원들을 향해 “국내에서 처음으로 실시된 만큼 한국 정치사에서 역사적이고 의미 있는 현장에 있기 때문에 자부심을 가져달라”는 얘기로 대신했다.

기실 국민의 당은 배심원단을 꾸릴 때 해당 선거구 유권자 가운데 시민대표로 50%, 학계 20%, 시민사회단체15%, 직능단체 15% 등으로 구성했다.
직능단체를 포함한 시민사회단체의 경우 규모에 따라 인원을 할당한 뒤 그 수만큼 배심원들을 추천해달라고 요구하는 형태였다.
이에 국민의 당은 일단 시민단체 및 협회로부터 추천된 배심원들을 이미 18일부터 20일까지 실시될 경선 시간대별로 배분을 했고, 경선 바로 전날 해당자에게 참석 통보를 일방적으로 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후보자들은 각 단체및 협회마다 19일의 서구갑과 광산구 갑 배심원으로 몇 명, 20일의 광산구을, 동남구갑에는 몇 사람이 참여한다는 사실이 18일 경선을 계기로 수면위로 떠오르면서 발빠른 선거캠프에서는 배심원단 공략에 들어간 셈이다.배심원 명단은 국민의당에서 흘러 나왔다기 보다는 배심원으로 선발된 사람들이 보안을 유지하지 않은 채 자랑치거나 가까운 사람에게 얘기하다 보니 그 단체가 추적되면서 노출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후보자들은 총선 후보선출을 위한 배심원들을 찾느라 모든 조직과 인원을 총동원하게 된다.
배심원을 한명이라도 찾았을 경우 그를 잘 아는 자신의 선거 캠프 조직원을 동원해 접촉케 하고 여의치 않으면 경선장 입구에서 기다렸다가 특정 후보를 지지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조직과 동원 선거가 가능한 후보자가 유리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 돈으로 배심원들을 매수해 표를 사들이는 불·탈법 선거운동이 일어날 수 있는 개연성이 상존하고 있다.
예컨대 북구갑 배심원으로 참석한 A씨는 자신이 배심원으로 참석한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지만 경선 시작 몇 시간 전 특정 후보로부터 “잘 부탁한다”는 전화를 직접 받았다 한다. 그리고 1시간 후 다른 후보로부터 ‘열심히 할테니 한 표를 부탁한다’는 내용 위에 자신의 직함까지 적은 문자메시지를 받았다는 것이다.
사전에 배심원 명단이 유출됐거나 그렇지 않다면 조직이나 동원 선거 능력을 갖춘 후보가 아니면 가능할 수 없다는 게 A씨의 얘기다.

이처럼 선거 후유증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는 국민의당이 뽑은 배심원단 샘플 수가 100여명 정도에 불과해 규모가 너무 적은 데 있다. 18일 치러진 북구갑 경선은 그런데로 넘어갔지만 19·20일에 치러질 나머지 배심원단 경선은 이미 명단이 나돌고 있는 만큼 돈 봉투 작업도 가능하다는 게 선거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렇게 되면 배심원단이 광주시민들의 여론을 담보할 수 있냐는 문제가 제기될 수 밖에 없다. 결국 숙의 배심원제는 민심을 왜곡하는 투표 행태이고 지탄의 대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더욱이 학계의 경우 모 대학 교수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바람에 다른 대학과의 형평성 뿐만 아니라 다른 초·중등교육계로부터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한 술 더떠 국민의 당은 배심원제를 광주에서 치른 것은 역사적인 일이라고 자랑하는 것은 좋지만 당의 얼굴이라고 하는 안철수, 그리고 천정배 대표가 참석치 않은 것도 옥의 티로 남는다.
안 대표는 일정상 맞지 않아 불참했고, 천 대표는 늦게라도 도착해 인사말을 하겠다는 사회자의 멘트가 공허하게만 들린다.

특히 ‘숙의’라는 사전적 의미는 ‘깊이 생각하여 넉넉히 의논’한다는 얘기다. 그래서 국민의당은 배심원들을 테이블 당 10명씩 소그룹으로 나눠 후보자들의 정견발표와 선관위의 질의 응답을 들은 뒤 특정후보에 대한 미진한 정보나 알고 싶은 사항이 있으면 질문을 하라며 토의시간을 가졌다.

이러한 시도는 좋은 반응을 일으켰다. 하지만 문제는 시간이 짧은데다 논리적이거나 선거를 잘 아는 배심원이 분위기를 주도하면서 특정후보를 공격하거나 띄우는 기회를 줄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문제는 배심원들의 총의가 모아진 질문지를 국민의 당 관계자들이 멋대로 선택해서 질문하도록 유도함으로써 당초 취지를 되살리지 못했다는 게 참석자들의 평가다. 질문의 수준이 그렇고 그런 평범한 내용을 추려 공통 또는 개별 질문을 했다는 얘기다.질의 응답이 끝났다며 마무리 발언을 생략하고 후보자들을 연단으로 내려가도록 했다가 실수라며 다시 불러들이는 촌극이 연출됐다.

이러한 진행상황 뿐만 아니라 이날 행사를 위한 준비가 소홀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투표 결과를 발표하면서 후보자별로 배심원제와 여론조사 결과, 그리고 가산점을 포함한 집계 결과를 따로 알려줘야 했음에도 총점만 그대로 발표하는 운영상의 미숙함을 낳았다. 저녁식사를 미처 하지 못한 배심원들에게 과자부스러기 몇 개 제공하고는 선거법에 위반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해명한다.
배심원들을 위한 주차권도 해결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당을 주겠다며 A4용지를 덜렁 테이블에 나눠주고는 계좌번호를 적어내라고 한다. 어찌 보면 시민대표라고 하는 배심원들을 전혀 배려하지 않은 셈이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국민의당이라는 제3당으로 거듭나 광주시민들의 표심을 얻기엔 아직 멀었다는 배심원들의 지적이 울림으로 다가오는 순간이다. <광주뉴스통=박병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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