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배신자’ 지목을 받은지 2주 만인 8일 사퇴했다.
유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새누리당 의원총회의 뜻을 받들어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난다”고 밝혔다.

▲ 박근혜 대통령으로 부터 '배신자 낙인' 찍힌지 2주 만에 사퇴의사 밝히고 물러나는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

유 원내대표는 “평소 같았으면 진작 던졌을 원내대표 자리를 끝내 던지지 않았던 것은 제가 지키고 싶었던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그것은 법과 원칙, 그리고 정의다. 저의 정치생명을 걸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우리 헌법 1조 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로써 유 원내대표는 선출된 지 156일 만에, 지난달 25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을 행사하며 유승민 원내대표를 향해 ‘배신의 정치 심판론’을 언급한 지 13일 만에 물러났다.

유 원내대표가 여당 의원총회의 ‘박수’로 원내대표 사퇴권고를 의결하고 물러난 것을 두고 정당이나 사회각계 각층의 반응이 뜨겁고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여당 원내대표를 쫓아내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민망하고 서글프다”고 촌평했다. 그는 “새누리당은 염치와 체면을 내던지고 박근혜 대통령만 좇아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문 대표는 이어 “메르스와 가뭄, 가계부채로 경제가 어렵고 먹고 살기가 갈수록 힘든 이 때 정부·여당은 국민은 안중에 없고 오직 권력 투쟁 뿐”이라고 말했다.그는 또 “청와대의 출장소로 전락한 새누리당도 민망하기는 마찬가지다. 박 대통령과 여당은 낯뜨거운 권력투쟁을 하루 빨리 멈추고 민생을 돌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유 원내 대표의 야당 파트너였던 새정연의 이종결 원내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에서 “새누리당은 ‘박정회’(박근혜의 유정회)다” “朴대통령은 ‘프레지던트 오블리제’”라고 직격탄을 날렸다.그는 이어 “대통령의 거부의사가 담긴 국회법 개정안 투표에 새누리당이 불참한 것을 두고 국민들은 새누리당이 ‘박정회’가 됐다고 판단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박정회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유신헌법에 따라 국회의원을 자신이 직접 임명했던 ‘유신정우회(維新政友會·약칭 유정회)’를 박근혜 대통령도 따라하고 있다고 꼬집은 말이다.
그는 또 “박근혜 정부는 책임질 일만 생기면 발을 빼고 남 탓하고 떠넘기는 유체이탈 정부”라고 지적하면서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의무는 없고 권리만 누려서 ‘프레지던트오블리제’라는 신조어가 생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는 “갑작스럽게 우리 당 중진 의원 수사내용이 보도를 통해 나오고 있는데, 여야 없이 ‘박근혜발 사정’이 그동안의 박근혜 정부의 무능과 잘못된 정보의 관리를 공안몰이로 몰아가려는것 아니냐는 걱정들이 커져가고 있다. 그래서는 안된다. 반성하고 성찰할 때다”라고 지적했다.

새누리당 이혜훈 전 최고위원(51·사진)은 8일 CBS라디오 ‘박재홍의 뉴스쇼’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날 의총이 유승민 원내대표 거취안을 두고 표결을 하지 않는 방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큰 데 대해 “표결을 하지 않는 이유는 지도부나 권력자가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거나 해서 국회의원들의 소신투표를 방해하려는 의도가 있을 경우에 ‘자, 박수로 통과시킵시다, 이의 있는 사람 있습니까? 이의 있는 사람 없죠.’ 이런 식으로 하면 북한식밖에 없다”고 말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추미애 최고위원은 8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어젠 있어선 안될 물고기, 피라니아를 잡기 위해 저수지의 물을 다 뺐다. 가뭄이 심각한 가운데 참으로 망측한 일”이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날 새누리당이 의원총회를 열어 유 원내대표의 거취를 결정키로 한 것을 두고, 최근 강원도의 한 저수지에서 발견된 피라니아의 확산을 막기 위해 저수지의 물을 모두 뺀 사건에 빗댄 것이다.

동양대 진중권 교수도 8일 이번 유승민 사퇴를 북한의 숙청에 비유하며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위터에 글을 올렸다. “방금 의원 동무들의 열화같은 박수로 공화국 최고 존엄을 모욕한 공화국 반동분자 유승민이 숙청됐답니다”라는 글을 남겻다. 고 말했다.
진 교수는 이어 “다음 숙청 대상은 당권력 서열 1위인 김무성 동지겠죠”라고 덧붙였다.

◾ 다음은 유 원내대표가 기자회견을 통해 박힌 사퇴의 변 전문 ◾
-원내대표 직을 내려놓으며...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당원 동지 여러분!
저는 오늘 새누리당 의원총회의 뜻을 받들어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납니다.
무엇보다 국민 여러분께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고된 나날을 살아가시는 국민 여러분께 저희 새누리당이 희망을 드리지 못하고, 저의 거취 문제를 둘러싼 혼란으로 큰 실망을 드린 점은 누구보다 저의 책임이 큽니다.
참으로 죄송한 마음입니다.
오늘 아침 여의도에 오는 길에, 지난 16년간 매일 스스로에게 묻던 질문을 또 했습니다.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
정치는 현실에 발을 딛고 열린 가슴으로 숭고한 가치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진흙에서 연꽃을 피우듯, 아무리 욕을 먹어도 결국 세상을 바꾸는 것은 정치라는 신념 하나로 저는 정치를 해왔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진작 던졌을 원내대표 자리를 끝내 던지지 않았던 것은 제가 지키고 싶었던 가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법과 원칙, 그리고 정의입니다.
저의 정치생명을 걸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우리 헌법 1조 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습니다.
오늘이 다소 혼란스럽고 불편하더라도 누군가는 그 가치에 매달리고 지켜내야 대한민국이 앞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했습니다.
지난 2주간 저의 미련한 고집이 법과 원칙, 정의를 구현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면, 저는 그 어떤 비난도 달게 받겠습니다.
거듭 국민 여러분과 당원 동지 여러분의 용서와 이해를 구합니다.
임기를 못 채우고 물러나면서 아쉬움이 있습니다.
지난 2월 당의 변화와 혁신, 그리고 총선 승리를 약속드리고 원내대표가 되었으나, 저의 부족함으로 그 약속을 아직 지키지 못했습니다.
지난 4월 국회연설에서 “고통받는 국민의 편에 서서 용감한 개혁을 하겠다. 제가 꿈꾸는 따뜻한 보수, 정의로운 보수의 길로 가겠다. 진영을 넘어 미래를 위한 합의의 정치를 하겠다”고 했던 약속도 아직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원내대표가 아니어도 더 절실한 마음으로 그 꿈을 이루기 위한 길로 계속 가겠습니다.
저와 꿈을 같이 꾸고 뜻을 같이 해주신 국민들, 당원 동지들, 그리고 선배 동료 의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광주뉴스통=박병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