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권 실세들에 거액을 건넸다는 성 전 회장의 ‘폭로’는 정권의 심장부를 겨냥하고 있다는 점에서 4·29 보궐선거 판세에 지각 변동과 함께 2012년 대선자금으로 비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뇌관’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다시 말해 검찰 수사가 더 깊숙이 진행되면 이번 사건이 ‘부메랑’이 아니라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실제 성 전 회장은 지난 2002년 옛 자유민주연합에 16억 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건넨 혐의로 구속된 전력이 있다. 성 전 회장을 ‘충청권의 박연차’로 부르는 것도 이러한 연유에서다. 직·간접적으로 인연을 맺지 않은 유력 인사는 없다고 봐도 된다는 게 충청 지역 의원들의 전언이다.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은 PK(부산·경남) 정관계 인사들과 광범위하게 인연을 맺거나 유착하면서 전방위로 금품을 살포한 혐의로 수감된 기업인이다. 지난 2008년 ‘박연차 게이트’ 수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친노(친노무현)계 인사가 주로 대상이었다. 하지만 수사망이 넓혀지면서 박진 전 의원을 포함한 여권 인사들도 된서리를 맞았다.

이번 ‘성완종 리스트’ 수사도 현재는 친박 주류가 표적이 됐지만, 수사가 진행되다 보면 의외의 결과가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새정치연합과 여권 비주류인 친이계도 자유로울 수 가 없다. 성 전 회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이던 2005년과 2007년 두 차례 특별사면을 받았는데 2005년에는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청와대 민정수석이었고, 2007년에는 청와대 비서실장을 맡고 있었다.

성 전 회장이 노무현 정부 마지막 특사를 통해 재기하자마자 이명박 전 대통령의 2008년 대통령직 인수위에 참여했다. 여야를 넘나드는 ‘성완종 인맥’을 입증하기에 충분한 반증이다.

여권 일각에서는 성 전 회장이 운영하던 대아건설이 훨씬 덩치가 큰 경남기업을 인수·합병한 시기가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이란 점을 주목하는 인사들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은 우선적으로 성 전 회장이 한나라당 당 대표 경선과 대선 기간인 2011년∼2012년에 홍준표 경남지사와 홍문종 의원, 서병수·유정복 시장 등 유력 정치인 4명에게 8억원을 건넸다는 의혹의 실체를 우선 규명할 방침으로 알려졌다. 공소시효가 완성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에 대해 8억원 수수 의혹 당사자들은 물론 리스트에 거론된 김기춘·허태열 전 대통령 비서실장등은 이날 “검찰 수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와함께 새정치민주연합 경남 지역위원장 8명이 이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1억원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홍준표 경남지사를 특가법상 뇌물수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것도 특이할만 하다.

검찰 수사와 맞물려 여야 정치권도 이날 대통령선거 자금 수사 공방을 주고받으며 정면 충돌했다. 야당이 여권의 대선 자금 의혹이 연관된 이번 사건을 ‘친박 게이트’로 규정하고 맹공을 퍼붓자, 이에 맞서 여당 지도부가 지난 2012년 대선 자금 문제에 대해 여야가 함께 조사를 받자고 반격하고 나선 것이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12일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 지난 2012년 대선자금 의혹으로 확산한 것과 관련, 필요하다면 여야가 함께 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도 이날 경기 성남 중원구 정환석 후보 선거 사무소 개소식에 참석, ‘성완종 리스트’와 관련해 “불법 대선자금의 일단이 드러났다”라며 “박근혜 대통령의 전·현직 비서실장 세 명을 포함한 대통령 주변 권력들의 집단적인 거액 뇌물 비리가 폭로된 사상 초유의 부정부패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대검찰청은 12일 긴급 간부회의를 열고 광주 출신 문무일 대전지검장을 팀장으로 하는 ‘성완종 리스트’ 특별수사팀을 꾸리기로 결정했다.

지난 9일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경향신문과의 마지막 인터뷰에서 2012년 대선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캠프 핵심 인사에게 대선자금을 전달했다고 주장한 만큼 이번 수사가 사실상 대선자금 수사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는 안대희 전 대법관이 이끈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2003년 이른바 한나라당 ‘차떼기’ 사건 수사에 나선 지 12년 만이다.

특별수사팀의 공언대로라면 2012년 대선 당시 선거자금의 흐름도 수사 대상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 성 전 회장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후보 캠프 조직총괄본부장을 지낸 홍문종 의원(60)에게 2억원을 건넸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성 전 회장이 남긴 메모지도 이번 수사가 대선자금 수사로 번지는 데 주요 단서로 활용될 수 있다. 성 전 회장의 금품 제공 정황이 담긴 메모는 필적감정 결과 성 전 회장 본인이 작성한 것으로 파악됐다.

해당 메모에는 유정복 인천시장(58) 이름 옆에 ‘3억’이, 서병수 부산시장(63)으로 추정되는 ‘부산시장’ 옆에 ‘2억’이 쓰여 있다. 2012년 대선 당시 유 시장은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직능총괄본부장을, 서 시장은 선거자금의 총괄책임자인 당무조정본부장을 지냈다.

한편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지난 9일 새벽 경향신문과 전화 인터뷰를 통해 “꼭 좀 보도해달라”고 여러 차례 당부했다고 경향신문이 보도했다. 성 전 회장은 당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원 출석을 4시간가량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성 전 회장은 인터뷰 과정에서 자신이 검찰 수사의 희생양이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성 전 회장은 이 같은 억울함을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호소하고 도움을 요청했으나 냉담한 반응이 돌아오자 크게 낙심한 것으로 보인다. 성 전 회장이 남긴 메모에 이름이 오른 사실이 드러나면서 당사자들이 직접 시인하기도 했지만 성 전 회장은 실제로 이병기 대통령 비서실장, 새누리당 홍문종 의원 등 정·관계 고위 인사들에게 구명을 요청했다. 12일 성 전 회장 빈소를 찾은 새누리당 서청원 최고위원도 “성 전 회장과 전화도 했고 만난 것도 사실”이라면서 “(성 전 회장이) 도움을 요청한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성 전 회장은 특히 돈을 건넨 상대방의 이름을 거론할 때마다 “신뢰” “신뢰관계”라는 단어를 언급하면서 서운함을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어느 나라나 정치집단이란 게 의리나 신뢰 속에서 정권을 창출하고 신뢰를 지키는 게 정도”라면서 “우리나라도 그렇게 돼야 하지 않겠느냐”고 강조했다 한다. <광주뉴스통=박병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