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행사장에 모인 시·도민들은 적어도 여느 강연장과는 달리 소위 ‘동원된 사람’은 아닌 듯 싶었다. 요즘 주로 사용하는 ‘플래쉬 몹’ 형태의 그저 스타가 좋아서, 강연회 제목이 너무 가슴에 와 닿아서 왔다고 했다.

16일 야당의 텃밭인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타에서 ‘호남정치 복원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강연을 들으러 온 1천여 명이 넘는 시민들이 주고 받은 얘기다.
새정치연합의 전신인 평민당, 민주당에서 잔뼈가 굵은 소위 ‘정치깨나 좋아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구의원들도 대거 참석했다.

이 행사를 주관한 국민희망시대 정진우 회장의 인사말과 ‘민심떠난 야당, 회생 가능한가?’라는 정대철 전 민주당 대표의 강연에 이어 당권도전에 나설 박주선 의원이 등단하자 장내는 갑자기 엄숙해졌다.

박주선이 얘기하는 호남정치란 “호남을 중심을 중심으로 한 지역주의 정치를 말하는 게 아니다. 민생 민주 인권 평화라는 호남 고유의 정치를 실현시키고, 소외받고 낙후된 호남을 비약시켜서 그 토대 위에서 국가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는 정치”라고 포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때 공약으로 내세웠던 인사와 예산을 수치로 하나씩 들어가면서 이래도 되겠느냐"며 현 정부를 한심한 듯 비판하면서 , 그렇지 않아도 ‘외로운 섬’으로 전락한 호남을 더욱 고립시키고 있다고 메스를 가했다.

그렇다고 해서 새정치연합 지도부가 눈물과 피와 땀으로 일궈낸 호남민들을 대신 어루만져 주거나 안아줄 기색은 ‘눈곱’만큼도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모두가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

대선 때가 다가오면 ‘표 달라’고 하면서 모든 걸 다 해줄 듯이 약속을 해놓고는 돌아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되레 호남을 홀대한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호남으로는 전국정당이 될 수 없고, 대권후보로 나올만한 인물도 없을 테니 잠자코 앉아서 ‘지도부가 이리 오너라 하면 이리오고’ ‘저리 가거라 하면 저리가면 된다는 식’이라고 지적할 때면 자존심이 상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친노 세력의 좌장인 문재인이 떡 버티고 있는 한 호남의 정치복원은 요원하다고 못 박았다.
“지난 대선 때 별것 없이 후보로 나섰다가 부산에서 조차 상대후보에게 뒤져 참패했으면 자숙하고 있어야지 염치없이 설치고 나댄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국민적 관심이 전혀 없어 새정치연합의 당 지지율이 10%대에 그치고 있는 이때, 계파수장이라는 사람, 즉 문재인,정세균,박지원과 같은 사람들이 책임을 지고 2선으로 물러나는 게 당연함에도 비상대책위원회로 어물쩍 들어가 당권도전에 나서고 있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강조했다.

2004년 탯자리가 호남인 민주당을 쪼개고 떨어져 나간 열린우리당 이후 10년 동안 정권 재창출은 고사하고 오히려 명망있는 호남 정치인을 고사시키고 홀대하고 내모는 짓을 했던 지도부가 이제,그리고 조용히 물러서라는 뜻이다.

문재인은 그랬다.
참여정부 시절 ‘왕수석’으로서 호남인사와 예산에 대해 보태주기는 커녕 역차별로 광주,전남·북이 이토록 낙후되는 데 한 몫을 했다는 사실을 굳이 숫자를 들이대지 않더라도 알 만한 사람을 다 안다.
또 한번의 대권도전은 호남민들이 결코 용납하지 않을 거란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셈이다.

박주선은 이렇게 말한다.
참여정부를 탄생시키기 위해 절대적 지지를 보낸 호남민들을 내 팽개친 채 자신만이 노무현의 가치와 정신을 계승하고 정통성이 있다고 ‘호가호위’하는 문재인을 둘러싼 세력들을 일컬어 ‘친노’ ‘비노’가 아니라 ‘친文’ ‘비文’이라 규정하고 싶다는 것이다.

더욱이 친문세력은 호남민들이 바라는 정권교체에는 관심 없고 현재 오직 문재인이 당권을 잡고, 2016년 총선에서 자신의 계파 가운데 몇 사람 더 공천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지도부의 그릇된 판단 때문에 지지율은 여지없이 곤두박질치고, 자기들만이 당권을 장악해야 된다는 후안무취한 행동이 지속될 경우 박주선으로서는, 아니 호남민들로서는 어쩔 수 없이 심각한 결단을 해야 할 시기가 왔다는 말도 서슴치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새정치연합 당원 240만 가운데 당비를 내는 권리당원만 40민2천여명에 이르고, 당원 가운데 70~80%가 광주와 전남·북이거나 이를 연고지로 한 사람이 대부분이다. ‘바꿀 수 있다는 마음만 먹는다’면 못할 게 없다는 게 박주선의 생각이다.

호남출신 당원들이 당을 개혁하고 혁신할 수 있도록 감시자가 되고, 당원 주권운동을 펼친다면 호남정치는 복원될 수 있고,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보였다.

"호남민들을 자존심이 상할 정도로 업신여기는 대신 주인으로 섬기고 대접하는 그런 정당으로 새정치 연합이 거듭나길 그래서 바란다"는 것이다.

박주선은 자신이 존경해왔던 DJ처럼 스토리가 있는 인생을 살아왔다고 자평한다.
4번 구속, 4번 무죄를 받는 과정에서 집념과 의지와 용기, 지혜를 얻었고 불의와 타협 하지 않았다는 게 박주선의 인생이란다.

지난 97년 대선 때다.
당시 한나라당이 야당 후보였던 DJ를 국회 면책특권을 활용해서 비자금 사건을 터트렸을 때 박주선은 수사검사로서 사직할 각오로 비자금 사건을 유보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만일 상대후보인 이회창 후보가 자식 병역문제로 지지율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청와대의 바람대로 검찰 포토라인에 세웠더라면 과연 DJ가 당선됐을까...말문을 잇지 못한다.

그때 박주선이 용기와 기개있는 결단으로 비자금 사건을 유보했기에 그나마 수평적 평화교체도, 민주정부 10년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박주선은 나와 함께 역사를 쓸 사람이다’고 故 김대중 대통령의 말을 전하면서 겸연쩍어 하는 모습에 시민들은 박수로 화답했다.

그런 연장선상에서 그는 "새정치연합이 현재 처해있는 상황에서 당의 기여도를 놓고 볼 때는 '문재인' 보다 '박주선'이 몇 백배, 몇천 배 높다"고 강조하면서 강연을 마무리 했다. <광주뉴스통=박병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