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을 바라보며]맥쿼리 상대 승소, 플래카드 걸 일 아니다

최혁 | hchoi@namdonews.com





며칠 전부터 광주시내 몇 곳에 광주광역시가 제2순환도로 관련 소송에서 승소한 것과 관련한 플래카드가 나붙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내용이 담겨져 있지만 핵심은 ‘시가 재판에 이김으로써 앞으로 1조원의 혈세를 절약할 수 있게 됐다. 시민여러분들께서 내야할 통행료가 줄어들 게 됐으니 모두 축하할 일이다’라는 것이다. 이를 강조하듯 플래카드 하단에는 ‘경축’이라는 단어가 큼지막하게 써져 있다.
절로 실소가 터져 나온다. 저게 그리 드러내놓고 자랑칠 일인가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언론이나 시민들이 잘 했다고 칭찬해주면 머리 긁적이며 계면쩍어야할 일이지 광주시 스스로 북 치고 장구 칠 일은 아니라 여겨진다. 광주시가, 정확히 말하자면 행정에 밝은 강운태 시장이 맥쿼리 사의 꼼수를 제대로 잡아내 잘못을 바로 잡은 것이긴 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시가 맥쿼리사에게 봉 노릇 했던 근본적인 잘못은 시에 있기 때문이다.
플래카드는 광주시가 잘 해서 이런 좋은 결과를 냈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간접적으로는 강 시장에 대한 치적홍보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옳다구나. 플래카드 내걸면 시장님 이미지 좋아지겠다. 많이 좀 내걸라고 해야겠다” 그리 마음먹고 아랫사람들 부산떨게 했다는 느낌이다. 시 간부님들, “그건 아니다”라고 강변하겠지만 속이 뻔히 보인다. 좋은 일에 무에 그리 까칠하게 구냐고 할지 모르지만 경우가 아니어서이다.
잘된 것만 드러내고 잘못된 것은 어물쩍 넘어가려는 것은 당당한 일이 아니다. 시는 재정에 막대한 피해를 준 제2순환도로 계약과정의 잘잘못에 대해 분명히 밝혀야 한다. 우선 제2순환도로 1구간(두암 IC-지원 IC 5.67㎞)에 대한 연구용역을 누가 수행했는 지와 당시 책임선상에 있었던 시장과 간부들의 명단을 공개해야 한다. 지난 10년 동안 2천615억원이라는 막대한 혈세가 낭비됐는데도 이에 대한 책임을 지는 이가 아무도 없어서는 곤란하다.
광주시는 지난 1997년 제2순환도로를 건설키로 결정하면서 ‘2011년 광주시 인구 230만명, 통행량 1일 평균 9만4천여대’를 기준으로 한 용역결과를 토대로 맥쿼리사와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2011년의 실제 인구는 148만명에 불과했고 실제 통행량도 3만7천여대에 그쳤다. 따라서 예상통행량에서 부족한 1일 4만2천대분의 통행료(1일 5천여만원)를 시 재정에서 보전해주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시는 이런 엉터리 용역을 납품한 학계인사들에 대해 법적인 책임을 물어야 한다. 법적 추궁이 현실적으로 곤란하다면 그들에게 학문적 양심에 따른 도덕적인 책임이라도 묻는 것이 당연하다. 교통문제도 마찬가지다. 대형백화점이 들어서면 교통난이 극심해지는 것은 불문가지다. 신세계백화점이고 롯데백화점이고 주말이면 그 일대가 북새통을 이룬다. 그런데 건물신축 당시 실시됐던 교통영향평가는 모두 ‘문제없음’이다.
시는 맥쿼리사와의 잘못된 계약은 1997년 계약체결 당시의 시장이 져야한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엉터리 용역’과 잘못된 판단에 따른 시 재정 누수는 현 강 시장 재임시절의 광주 새 야구장 건설과 임대운영권 결정 과정에서도 발생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시는 ‘광주 야구경기장 건립 타당성 조사 및 기본계획’ 용역에서 40년간 운영 시 1천73억원의 수익이 발생할 것이라는 예측을 무시하고 ‘25년간 운영 시 18억원의 손실이 발생한다’는 기아차의 자체 용역 결과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감사원 조사결과 시의 정책적 판단에 오류가 있었음이 밝혀졌다. 한국감정원 평가를 기준으로 했을 때는 최소 154억원이, 시 자체 용역결과를 기준 시는 최대 456억원의 사용료를 낮게 책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엉터리 용역도 문제지만, 정확한 검증 없이 결정을 내려 시 재정에 손해를 입히는 일이 쉽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결국 그 손해는 시민들이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다. F1대회도 마찬가지다. 잘못된 용역결과를 기준으로 해 대회를 강행한 결과 지난 4년 동안 모두 2천여억원의 적자가 발생했다. 그런데도 이에 대해 사과하는 이들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잘못된 일은 어물쩍 넘어가고 잘된 일에는 생색내기 바쁜 행정’이 참으로 못나 보인다.

최혁<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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