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베이트 관련 진정을 제기한 약국 대표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6일 광주 서부경찰서 등에 따르면 지난 5일 오전 2시20분께 광주 서구 치평동 모 아파트 13층에서 A(41·여)씨가 투신해 숨졌다.

불법 리베이트 사건을 둘러싸고 검찰과 경찰에서 조사를 받아오던 A 약사는 무언가의 압박에 못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올해 초 약품업체 측이 작성한 ‘리베이트 수첩’에 언급됐던 광주 모 병원장 투신 사망 사례까지 합치면 불법 리베이트와 연루된 의약인 2명이 스스로 죽음을 택했지만, 그 배경은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경찰은 조사를 통해 숨진 A씨가 자신의 집에서 스스로 투신했다는 사실과 함께 그가 검찰·경찰 등 수사기관으로부터 조사를 받고 있거나 최근까지 받았던 사실을 확인했다.

숨진 A씨는 올해 초 ‘제약업계에 리베이트 수수가 만연해 있다. 수사해달라”며 검찰에 진정을 넣었다. 그는 “나도 약국을 경영하면서 제약업체로부터 리베이트를 받았다. 나도 처벌하고 다른 약국과 약품도매상도 처벌해달라”며 진정서를 내 검찰이 리베이트 관련 수사를 벌여왔다.

A씨는 지난 1월 약품도매업체로부터 고소를 당했다. 6년간 거래 관계를 이어오던 업체 측이 “약값 11억8000만원을 갚지않고 약국도 문을 닫아버렸다”며 사기 혐의로 고소를 한 것이다.

찰은 이와 관련 “‘상당기간 거래 관계가 있었던 점에서 민사책임은 있으나 형사책임(사기)이 있다고 보기 힘들다’는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넘겼다”고 밝혔다. 경찰은 '혐의 없음'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한 것이다.

A씨가 처벌을 감수하고 약국업계 불법 의혹을 제보하면서 동료 약사, 약품업체들과 불편한 관계를 만든 배경에 대해선 정확히 알려진 바 없다.

하지만, 경찰과 약품업계 안팎에서는 “A씨가 리베이트는 리베이트대로 챙긴 후 불법 사실을 알고 있다며 거액의 약값 결제를 의도적으로 미룬 것 아니냐”는 해석이 조심스럽게 나온다.

A씨 사망사건을 조사한 경찰은 “아파트에 쓸만한 물건 하나 남지 않을 정도로 금전적으로 많이 힘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주변인 조사 결과 제약업체 채무, 리베이트 관련 수사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지난 1월 8일 수완지구 자택에서 투신, 사망한 광주 모 병원 원장 B(48)씨의 죽음을 둘러싼 원인 역시 여전히 베일에 싸여있다.

지난해 말 광주지방경찰청이 약품업체 압수수색 과정에서 확보한 수첩에 ‘B원장의 리베이트 관련 구체적 범죄 혐의가 기재돼 있다’는 점에서 B씨가 수사 부담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지만, 설득력이 약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제약업체에서 리베이트를 수수한 사실이 확인되더라도 벌금형 내지 ‘길지 않은’ 징역형이 예상되는 만큼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판단에서다.

유족들은 당시 B원장 사망사고를 조사하던 경찰에 “경찰 수사와 관련해 부적절한 방식의 압박이 있었고, B원장과 알고 지내던 지인이 그를 협박하기도 했다. 망자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진술했었다.

그런가하면 의약리베이트가 그 수법도 교묘해지고 있다. 광주 C병원장은 2014년 5월 의약품 도매업체로부터 15억원을 빌렸다. 차용증도 쓰고 선이자 5000만원과 함께 매월 이자도 꼬박 꼬박 냈다.

중간에 6억원도 갚았다. 언뜻 보면 정상적인 돈거래처럼 보인다. 하지만 C병원장은 1년 후인 2015년 10월 자신에게 돈을 빌려준 도매업체의 의약품을 납품받았다.

경찰은 C병원장이 빌린 16억원을 의약품 도매업체가 병원 납품 대가로 제공한 리베이트로 보고 수사를 펴고 있다. 돈을 빌려주는 수법으로 리베이트를 주고받았다는 게 경찰의 판단이다. 의약계의 불법 리베이트 수법이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2010년 11월 의약계의 리베이트 관행을 근절하기 위해 쌍벌제를 실시했다. 의약품 납품을 대가로 리베이트를 제공한 사람만 처벌하는 기존 법을 보완해 리베이트를 받은 의료인까지 처벌을 할 수 있게 강화한 것이다.

정인서 기자 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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