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남은 영화극장 선전부장
극장가서 ‘남부장’모르면 ‘간첩’

영화포스터 작업 37년 ‘인생올인’

상영관 감소로 일감줄어

‘아쉬움’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놈놈놈’ 까지, 비비안 리에서 이대근, 정우성 까지. 남성희(64) 씨는70년대 영화에서부터 최근 영화까지 줄줄 꿰고 있는 광주 ‘극장가’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 37년 동안 영화포스터 붙인 ‘거리의 도배사’

남씨는 군대 제대 후 막노동판에서 전전하다 아는 사람의 소개로 영화관에 발을 처음으로 들여놓았다. 그 때 들어간 곳이 지금은 없어진 신양극장. 그가 신양극장에서 맡은 일은 영화포스터를 시내 곳곳에 붙이는 일이었다. 70년대 이후 광주시내에는 서른 개가 넘는 극장이 있었고 극장마다 영화 포스터를 붙이는 작업을 하던 ‘선전부’가 있었다.

‘선전부’에서 일하게 된 남씨는 하루 종일 250~300장 정도의 영화포스터를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각 골목, 전봇대, 담 등에 붙였다. 나이 31살 때인 1972년부터 일해 왔으니 올해로 37년째다. 37년 동안 광주 시내 곳곳을 다녀 타고 다니는 오토바이도 지금까지 10번 정도 바뀌었을 정도다. 오래 일하다보니 광주 극장가에서는 일명 ‘남부장’ 이라 불리는 그를 모르는 이가 없다. 당시 그는 포스터 부착 외에도 영화간판을 달거나 극장청소 등의 일도 도맡아 했다.

남씨는 “월급은 없었으나 영화관에서 숙식을 해결할 수 있었고 영화도 맘껏 볼 수 있어 좋았다”고 회고 했다. 또 “조금씩 나오는 선전비, 밥값을 모으거나 극장에서 홍보용 영화초대권으로 나오는 500~1000장의 영화표로 생활비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한번은 포스터를 붙이기 위해 오토바이를 몰다가 큰 교통사고를 당해 1년 동안 치료와 후유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 마지막 남은 ‘극장 선전부 남부장’

“88 서울 올림픽 이후 소극장들이 많이도 문을 닫았습니다, 그 때 쯤 극장마다 있던 선전부도 없어진 것으로 기억합니다”. 남씨가 처음 극장가 일을 시작하던 때에 40여개에 달하던 극장수는 현재는 10여 곳 정도만 남았다. 영세한 소극장들은 대거 문을 닫고 덩치 큰 복합상영관들만 남았다. 소극장들이 활성화 되어 있을 때는 일주일마다 두세 종류의 영화 포스터를 들고 새벽부터 늦은 저녁까지 일할 정도였다. 하지만 극장 감소는 영화포스터 부착을 맡았던 사람들의 일자리도 없어지게 했다.

현재 광주 내에서 영화 포스터를 붙이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남씨가 유일하다. 쉽게 말해, 광주시내에서 볼 수 있는 영화 포스터는 모두 그가 붙인 것들이다. 208군데의 게시판에 포스터를 붙이는데 모두 혼자 도맡고 있는 것. 예전에 같이 극장 선전부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학원 포스터를 부착하는 일 등으로 옮겨갔다. 마지막까지 남은 남씨도 영화포스터를 부착해 얻는 수입만으로는 부족해 학원 광고지를 붙이는 일까지 시작했다. 남씨는 “지금도 영화포스터를 나에게 맡기는 극장이 대여섯 곳에 불과하다”며 “머지않아 학원광고지에 주력해야할 것 같다”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얼마 전에는 일할 사무실 공간 등을 마련해 주었던 극장협회 마저 없어졌다. 대형영화체인점들이 들어서면서 결국 문을 닫은 것. 그 와중에 남씨는 소중한 자료를 잃었다. 72년부터 지금껏 모아온 영화 포스터가 쓰레기와 함께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지난 37년 동안 모든 것이 변했다. 극장들은 대형화됐다. 관객들도 과거에는 중장년층 위주였지만 지금은 학생이 많다. 남씨가 타던 자전거도 이제는 오토바이로 바꿨다. 하지만, 그가 영화포스터를 붙이면서도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오토바이 뒤에 항상 포스터와 풀통이 실어져 있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때처럼 영화포스터를 붙이는 풀도 직접 만들어 쓴다. 영화포스터 붙이는 일을 천직으로 여기는 그의 마음도 그대로다. 남씨는 “인터넷이나 전화가 아무리 발달해도 직접 포스터를 보는 것보다 더 낫겠냐”며 “내가 붙인 영화포스터를 보고 극장으로 올 사람들이 있다는 걸 생각하면 뿌듯하다”고 말했다. 그가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한 극장에서 새로운 영화 포스터가 나왔다는 연락이었다. 그는 풀통이 매달린 오토바이를 몰고 쏜살같이 달려갔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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