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러서지 않을 것 같던 무더위도 계절의 변화를 이기지 못한 모양이다.

유난히 길고 무더웠던 여름이 물러선 자리에 가을의 전령들이 비행한다.

매미 울음소리 대신 고추잠자리의 비상과 귀뚜라미 화음이 잘 어울리는 걸 보니 분명 가을이다. 아침에 부는 바람 냄새가 좋고 저녁에 느껴지는 바람 색깔이 선선한 요즘이다.

폭염으로 지쳐있던 인간의 근육은 언제 그랬냐는 듯 가을을 흡입한다. 인간의 교활한 감정이다.

길옆 코스모스와 정겨운 인사를 나누며 퇴근하는 길에 후배 녀석의 전화를 받았다. 퇴근길이라서 더 반가웠다.

소주 한 잔 하자고 하지 않을까 싶어서다. 그런데 웬걸, 미리서 인사 한단다. 추석 잘 보내시라고. 그러고 보니 추석이 코앞이다.

그래서일까 사람들 표정이 조금은 들떠 보이고 거리도 평소보다 분주하다. 허름한 작업복 차림으로 길을 걷는 중년 남자의 손에 들려진 검정봉지 안에 추석이 끌려온다.

일부러 외면 해보지만 남자의 손에 들려진 허접한 짐이 자꾸 눈에 밟힌다.

언제부터인가 명절은 우리 서민들에게 불편한 행복으로 다가온다. 경제적으로 넉넉해 졌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배곯았던 시절의 명절보다 행복지수가 떨어진다.

뼈 빠지게 일해도 내 집 마련은커녕 빚만 늘어난다. 청운의 꿈은 꿈일 뿐이고, 개천에서 용 낳다 는 말은 아득한 전설이 되었다. 왜 그러는 것일까.

분배의 정의가 바로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제민주화를 외치면서도 갑의 횡포에 눈감은 사회에서 을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은 사자를 토끼우리에 가둬두는 꼴이다.

갑이 선한 경영과 공정한 분배를 지금처럼 거부하는 한 을의 행복지수를 담보할 수 없다.

이는 결국 사회 불안으로 이어져 국가와 갑은 더 많은 사회적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갑들만의 공간이 아니다.

훨씬 많은 을들이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성숙하려면 그래서 명절 등이 행복해 지려면 특권과 반칙, 불균형과 불공정이 사라져야 한다.

해서 서로 협력하고 상생하는 경제민주화를 완성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아부지들의 어깨가 처지지 않고 쓸쓸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힘들고 어렵지만 이번 추석만큼은 우리 모두에게 넉넉하고 행복한 한가위가 되었으면 좋겠다. 한가위만 하여라.

전라남도학원연합회장 김순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