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전 6.10 항쟁을 전후하여 광주지역 곳곳에서 볼 수 있었던 만장, 그리고 맨 앞에서 시위대의 용기를 북돋았던 깃발, 각종 유인물이나 벽보 등으로 사용됐던 판화 등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전시가 마련됐다.

광주시립미술관은 이상호.전정호 두 작가가 1987년 당시에 제작했던 작품들과 훼손된 작품들을 일부 복원하는 작업을 거쳐 ‘응답하라 1987’이라는 제목으로 3.4전시실에서 열고 있다.

‘철규를 살려내라’, ‘살인 최루탄을 추방하자’, ‘4·15 호헌 절대 반대!’, 민주화 열기가 뜨거웠던 1987년의 거리와 광장으로 되돌아간 듯 한 착각이 일어날 정도로 가슴 뭉클한 현장감이 되살아난다.

걸개그림에 사용한 색채가 워낙에 강렬하기도 하고 ‘해방아리랑’, ‘죽창가’ 등 원판과 함께 내걸린 판화 작품들은 당시 사람들의 비장한 마음을 대변하고 있다. 다양한 매체의 작품들이 주는 분위기에 압도당한다.

광주시립미술관과 5·18기념재단이 ‘6월 항쟁’ 30주년을 맞아 이상호·전정호 작가의 ‘응답하라 1987’전을 마련했다. 이 전시는 오는 7월30일까지 열린다.

전시에선 1987년 당시 집회나 시위용으로 제작됐던 걸개그림, 판화, 깃발그림, 만장(죽은 이를 슬퍼하며 쓴 글을 비단이나 종이에 적어 기(旗)처럼 만든 것) 형식의 현장미술 시각매체들이 40여점이 전시된다. 작품 대부분은 2006년 이상호, 전정호 작가 등에 의해 복원된 것들이다.

이상호, 전정호 작가는 1982년 조선대 미술대학에 입학해 1985년 대학 미술패 ‘시각매체연구회’를 결성했다. 1986년에는 ‘시각매체연구회’를 ‘땅끝’으로 개편해 학내 미술운동을 주도했다.

미술패 후배들과 반독재 민주화와 학원 민주화 투쟁을 위한 수많은 판화, 걸개그림, 깃발, 만장, 현수막 등을 제작했다.

특히 이상호, 전정호 작가는 1987년 미술대학 4학년 학생으로 노동자와 농민이 성조기를 찢는 걸개그림 ‘백두의 산자락아래 밝아오는 통일의 새날이여’를 제작해 미술인 최초 국가보안법으로 구속 수감되기도 했다. 이 작품은 2005년 두 작가에 의해 복원됐으며 이번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다.

또한 1987년 이상호, 전정호 작가가 제작한 17점의 목판화와 고무판화 작품, 그리고 판화 원판 일부를 직접 볼 수 있다.

11일 개막식에 앞서 이상호.전정호 두 작가가 KBS방송의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두 작가는 “1980년대 수많은 현장중심 시각매체물들을 제작했는데, 경찰에 의해 탈취되거나 우리가 잘 관리하지 못해 현재 남아있는 것이 거의 없어 아쉽다”며 “이번 전시를 계기로 미술관에서 현장미술 시각매체에 대한 자료 수집 및 관리, 체계적인 연구가 이뤄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임종영 학예연구사는 “1987년 20대 후반의 미술학도였던 이상호, 전정호 등에 의해 제작된 수많은 걸개그림, 판화작품, 깃발그림, 만장 등은 우리 시대 자화상이자 자연스런 예술적 산물”이라고 평했다. 이들 작품의 상당수는 조선대 미술관에서 소장 보관하고 있는 것들이다.

11일 개막식을 가진 자리에서 홍성담 작가는 축사를 통해 "정말 후배들이 치열한 삶을 살아왔고 민중미술로 치부되지 못했던 그들의 작품이 미술관 속에서 되살아난 것에 대해 무한히 기쁘고 감격스럽다"며 중간중간 목이 매어 말을 잇지 못하는 일이 자주 벌어졌다.

이상호.전정호 작가는 1961년 목포와 신안에서 출생해 1989년 조선대학교 미술대학을 함께 졸업했다. 이들은 조선대학교 미술패 ‘땅끝’ 창립을 주도했고, 광주민중문화운동협의회 미술분과 ‘일과 놀이’, ‘광주시각매체연구회’, ‘민족미술협의회’, ‘광주민족민중미술운동연합’ 회원으로 활동했다.

1980년대 이후 이상호 작가는 자주, 민주, 통일을 주제로 불화, 만평, 엽서와 우표 그림 등 다양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전정호 작가는 친일세력 청산과 사회적 약자 등에 대한 관심을 그림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정성용 기자 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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