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4학년의 딸과 오늘 저녁을 함께 먹다가 문화관광부에서 지역문화자원 논문이나 스토리텔링, 수필 등과 같은 공모가 있다고 이야기 했다. 미술대학에서 이론공부를 하고 있으니 논문이든 스토리든 한 번 도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딸은 자신도 취준상태로 들어간 상태여서 시간이 없어 어렵다는 반응이었다.

잘하면 문화관광부장관상에 상금도 몇 백만원인데 좋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별로라는 반응이었다. 8월에 접수하니 한 번 시간을 갖고 미술이론 공부하는 사람으로 지역의 문화인물을 발굴해서 스토리를 써보면 좋겠다고 했더니 시큰둥하다.

그러다가 내가 오늘 시청에 갔다가 몇몇 공무원을 만났는데 자기 부서와 관련된 내용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간부가 있다고 말했다. 지역 문화축제 공모사업도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 사람에게는 연락도 하지 않는 등 지역발전을 저해하는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상급자가 지시한 '포토존TF회의'도 있었는데 그 분이 그만 두고 나니 슬그머니 사라져버렸다. 시장이 지시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도 형식적인 회의만 지난해 말께 3번쯤 하고 말았다고 말했다. 별로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고 혼자 투덜거렸다.

뭐 회의비용이 책정된 것도 아니었으니 사실 공식적인 회의도 아닌 셈이었다. 근데 생각해보면 문화도시 광주의 포토존을 마련해보기 위해 4~5명 되는 바쁜 사람들을 불러다가 대충 시간만 때우다가 끝낸 셈이 아닌가.

담당자에게 물었더니 지시하신 분이 그만 두었고 포토존 업무가 각 부서로 나누어져서 진행되고 있다는 답변이었다. 사실 공직사회 내에는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또 다른 부서에서는 국장급 책임있는 간부를 만나러 갔다가 자리에 없어 잠시 옆방 회의실에서 기다렸다. 책꽂이에서 나뒹굴고 있는 광주시의 두꺼운 각종 산업발전 용역보고서들이 있었다. 1년 사이로 거의 비슷한 제목의 보고서를 보고 실소를 금치 않을 수 없었다.

광주시와 광주테크노파크가 내놓은 이 보고서는 정말 쌍둥이처럼 비슷했다. 어쨋든 보고서를 만들었는데 정말 그런 정책 방향대로 진행되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2년 전쯤 우연찮게 광주시의 각종 보고서 1백여개의 비전이나 목표를 정리해본 적이 있다.

그때나 오늘 본 보고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정말 광주시는 비전도 목표도 없는 도시라는 것이 서글펐다. 엄청난 용역비는 쓰는데 보고서를 제대로 활용하는 것인지. 광주의 발전을 위한 보고서를 만들려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보고서를 위한 보고서만 내놓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 수많은 제 각각의 비전, 전략, 목표 등등을 보면 광주시가 산으로 가는 것인지, 사공이나 제대로 있는 것인지 너무 걱정이 앞선다.

그런데 뉴스를 보니 오늘 오전에 광주시는 "보다 나은 조직(공직)문화를 위해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라는 이 물음에 '간부 공무원의 솔선수범과 함께 일하는 방식을 확 바꾸는 것이 정답'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전 직원이 참석한 공감회의에서 간부 공무원들이 이를 실천하는 선언을 했다. 선언문에는 3대 핵심 분야에 10대 추진과제가 담겼다. 가장 먼저 불필요한 회의 및 보고, 지시, 의전 등을 줄이기로 했다. 정말 가능했으면 좋겠다.

부서간 서열 없는 근평과 전보인사, 스트레스를 치유하는 후생복지 등 행복한 근무환경도 만든다. 실국간 칸막이를 없애는 협업과 현장에서 시민과 함께 소통하며 일하는 공유문화 확산에 주력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올해를 일하는 방식의 혁신을 위한 원년으로 삼아 변화를 주도할 간부 공무원과 함께 전체 직원들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 갈 계획이라고 했다. 정말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백년 후에라도 이 계획이 이루어진다면 그것도 늦지 않은 것이리라 생각한다.

정말 좋은 인재를 주위에서 발굴할 수 있는 데도 자신과 맞지 않다고 멀리하는 담당공무원, 포토존TF 회의 참석자에게는 일언반구도 없이 슬그머니 사라진 회의, 돈 빼먹는 하마처럼 종이더미로 쌓이는 각종 용역보고서 등을 보는 공무원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이런 곳에서 공직문화가 바뀌길 기대한다면 나는 정신이 똑바른 사람일까.

딸이 뒤에서 말한다. "아빠, 우리도 알아, 그래서 공무원을 철밥통이라고 하는거야. 그래서 모두 공무원이 될려고 용쓰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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