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로부터 이어온 침선예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정경희 작가의 8번째 침선작품전이 열린다. 영암한옥박람회 초대전이다. 4월 6일부터 9일까지이다.

바늘 끝으로 한국의 전통미를 담아내는 침선예술은 우리 민족의 정성과 끈기를 상징한다. 바늘 하나에 비상한 인내와 열정을 쏟아 붓는 침선문화는 지난한 작업의 연속이므로 마음만으로는 선뜻 뛰어들기가 어렵다.

지난 30여 년간 한국의 전통 침선으로 ‘손예술’의 가치를 오롯이 지켜 온 정경희 작가는 지난 2월에 일산 킨텍스에서 가진 7번째의 초대전에 이어 영암한옥박람회에서도 초대를 받았다.

“바늘자리에 꽃이 핍니다”라는 이 전시는 정말로 바늘 한땀 한땀에서 꽃이 피듯 한 느낌을 갖게 만든다.

정 작가는 지난 2008년 5월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세계 차 홈데코 초대전’을 시작으로 무안요갤러리(2008), 갤러리 이즈(2009), 학명미술관(2011), 일산 킨텍스(2017) 등 광주와 서울에서 7번의 전시를 가졌다.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들의 제목은 꽃신들의 행복이야기, 문살박이 연꽃, 행복바구니, 행복화원, 이 행복한 봄날 등 행복을 주제로 한 것들이 주를 이룬다.

중고교 시절 남농 허건과 대학 이후 아산 조방원 등 남종화 대가를 사사한 정 작가는 그동안 한국화에 현대적 해석을 가미한 작품 활동을 펼쳐왔다.

그가 1986년 이후부터는 어머니 윤판임 여사로부터 바늘과 실의 매력을 배우면서 30년을 전통침선 작품제작에 몰입해왔다. 올해 90세가 되는 윤 여사는 17세 무렵부터 바늘귀를 열어 실을 꿰고 가위로 천을 자르는 인생을 살아온 바느질의 숨은 장인이다.

정 작가가 몰두하고 있는 침선공예는 바늘, 자, 가위, 실, 골무, 인두, 다리미의 규중칠우閨中七友를 이용해 일상 생활용품과 소품들을 제작하는 예술영역이다.

바느질을 위한 도구인 바늘방석에서부터 모란도, 미인도 수저집, 미인도 인두판, 황금용, 골베개(육골침) 등의 조각보와 거북 수 노리개, 버선, 꽃신 등등 소품에서 대작에 이르기까지 그 형태가 다양하다.

정 작가가 선보이는 침선작품들은 전통적인 오방색을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세련된 예술미를 추구하였다. 여기에 전공인 한국화를 작업도안에 응용하여 작품에 실용성과 장식성까지를 담았다.

광주 수피아여고에서 41년간을 학생들에게 미술을 가르치고 정년한 정경희 작가는 이번 영암 한옥박람회 전시를 앞두고 “바늘 끝 30년을 한자리에 모으면 천길 우물도 팠겠다”면서 “꽃을 끌어안은 나비처럼 수틀을 끌어안고 바늘 끝에 꽃을 새겨 상 차린 잔치마당에 우주 가득 풍악소리를 듣고 싶은 심정이다”고 소감을 밝혔다.

평을 쓴 정인서 광주 서구문화원장은 “정경희 작가의 침선예술은 한국적인 것들의 정수이자 정신과 끈기를 담아온 우리 전통문화의 이야기들”이라면서 “작가의 바늘 한 땀 한 땀에서 풀어낸 작업에서 빚어진 천일야화 같은 여러 이야기는 그의 작가정신의 총량이자 오랫동안 살아 숨 쉬는 집안의 가풍에서 비롯된 장인의 혼이라 하겠다”고 말했다.

정경희 작가는 전남 목포 출신으로 목포 제일여고와 조선대 미술교육학과를 졸업했고 1976년부터 광주 수피아여고 교사로 재직했으며 올 2월말 정년퇴직했다.

정경희 작가의 초대 글

바늘 자리에 꽃이 핍니다

오늘도 바늘자리로 한 땀 한 땀 행복을 수놓는 저는 꽃을 부르고 열매를 부르며 숨 쉬는 이 땅의 기쁨들을 상 차리고 있습니다. 이 기쁨의 잔치마당에 벌 나비는 마중 나온 꽃들의 향기 가득한 빈객賓客입니다.

저의 이번 전시회는 제 직장생활 사십여 년을 마무리하는 감회어린 자리입니다. 여기에다 꽃을 끌어안은 나비처럼 제가 수틀을 안고 바늘 끝에 꽃을 새긴 지 삼십년인데 감사하게도 한옥박람회의 초대를 받아 옆 눈 팔지 않고 살아온 제 육십삼 년의 생애에다 직장생활로 쌓아올린 사십일 년의 보람을 한자리에 보탰습니다. 이제는 바늘자리로 상을 차린 잔치마당에 우주 가득 풍악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저에게는 침선을 손잡아주신 제 스승님이자 어머님인 윤판임 여사가 신년에 구십 세가 되십니다. 오늘도 바늘귀를 열어서 작업을 하시는 어머님 앞에 저는 절로 고개를 숙입니다.

저 또한 바늘 끝 30년을 한자리에 모으면 천길 우물도 팠겠다는 생각입니다. 수실에 뜨인 꽃송이마다 눈을 맞추고 상침을 뜨고 감치고 공그르고 마르고 시접을 하는 등 휘갑친 바늘 끝이 잘 여문 종자처럼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나비를 날린다니 이 짜릿한 조화에 홀려서 몰입한 삼십년의 바늘은 저를 지탱한 정신이고 제 영혼의 지문이었습니다.

저의 작업은 참 미련하게도 ‘침선’이라는 한 우물이지만 펼쳐낸 주제의 초점은 일관되게 ‘행복’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한 해 한 해 연치를 더할 때마다 제 잔치마당에는 행복의 가짓수가 늘어만 갔습니다. 작업도안을 새로 짜고 콧노래 흥얼이며 행복을 수 놓아가는 시간은 저에게는 절로 낙원입니다. 이 과정에서 돌확을 파들어 가듯 바늘과 밝은 두 눈과 손가락을 두루 작업장에 모아주신 하나님께 눈물의 감사기도를 드립니다.

바늘자리는 백화난만한 화원입니다. 백화난만을 상 차린 저의 작업의 모두를 저의 보람을 지켜봐 주신 여러분께 바칩니다. 감사합니다.

2017년 2월 새봄을 부르는 물소리 곁에서

秀香 丁 敬 姬 삼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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