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 변호사의 말마따나 해남에서 보냈던 2년은 삶에 있어 가장 소중하고 귀한 시간이었다. ‘지원장의 편지’라는 제목으로 책을 발간한 것도 그래서다. 정치할 것도 아닌데 변호사를 개업하면서 무슨 책이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한다. “열정과 진정성이 묻어 있으면 모든 것과 소통한다”는 말로 화두를 꺼낸다.

그가 처음 편지를 쓴 것은 2013년 봄, 3월하고도 6일이다. 부임하자마자 딱딱한 법원의 이미지를 새롭게 바꾸고 싶었단다. 그래서 직원들에게 편지를 썼다. 지원장의 티를 없애고 최대한 부드럽게, 이렇게 말이다.
계절을 알리는 봄비에 갓 피어오르는 목련꽃 소식, 직원 생일 챙기기, 해남지원의 동호회의 활동 등 소소한 일상의 얘기를 담았다.
여기에 시대를 풍미했던 시인들의 시를 시의성에 맞게 곁들였다.

‘하늘 아래 내가 받은 가장 커다란 선물은 오늘이고, 당신입니다’ 라는 나태주 님의 ‘선물’이라는 시가 첫 편지에 올려졌다.
그도 그럴 것이 편지를 쓰는 동기가 법원 구성원 상호간의 소통과 공감이었고, 그들을 가장 소중한 당신으로 여겼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직원들의 생각은 달랐다. 처음엔 의아하게 생각했다는 얘기다. ‘쪼금 쓰다 질리면 그냥 두겠지’ 라는 싸늘한 반응이었다.
매주 새로운 소재를 구상하며 글 쓴다는 게 그렇게 어려운 줄 몰랐다고 실토한 곽 변호사다. 하지만 그런 만큼 더욱 열정의 시간을 갖고 싶은 오기가 발동했다 한다.
그러면서 자신에 대한 성찰을 할 수 있는 '에센셜' 타임을 갖고 진정성과 일관성으로 마주 대한다면 해남지원이 어느 곳보다 행복한 직장으로 태어날 것이라고 믿었다.

거리감을 좁히며 소통하는 것이야 말로 직원 못지않게 군민들에게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 끝에 문화아카데미를 개설했다. 목포 시립교향악단을 초청해서 군민회관에서 공연을 했다. 매년 크리스마스이브 때나 하루 전에는 수능이 끝난 수험생들이 맘껏 끼를 발산할 수 있도록 청소년 축제를 열었다.

뭐라해도 가장 기억에 남을 문화행사는 법원 담장에 벽화그리기다. 관할 해남· 진도· 완도 지역 학생들을 대상으로 공모를 한 결과 출품된 작품 822점 가운데 91점을 입상작으로 뽑아 거기에서 다시 우수작으로 선발한 10점을 벽화로 그렸다.

▲ 광주지방법원 해남지원 담장에 그려진'미래가 가라앉지 않는 세월호 벽화'-완도 노화중학교 장유경양 출품작

여기에다 국민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기억될 진도 ‘세월호 참사’ 그림을 별도로 끼워 넣었다. ‘미래가 가라앉지 않는 배’라는 제목으로 출품한 완도 노화중학교 장유경 학생의 그림이 빠져 있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곽 변호사는 심사위원들에게 양해를 구한 끝에 시대적 아픔을 모두가 공유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상은 주지 않았지만 추가로 우수작으로 선정했고, 법원 담장의 벽화로 영원히 남도록 한 게 보람으로 남았다.

권위주의적으로만 느꼈고, 담장만 봐도 왠지 가슴이 움추려 들게 했던 법원이 스스로 앞장서 출품작을 벽화로 그림으로써 해당 학생들에게 자긍심을 느끼도록 했고, 여기에 학부모,교사 그리고 군민들이 가세하면서 공동체가 갖는 의미를 새록새록 거듭나도록 한 게 주효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시간이 날 때면 학교를 찾아가 특강을 했다. 학교폭력에 대한 것도 좋지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얘기를 많이 했다. 낙도인 소안도와 행간도에서 찾아가는 법정을 개최하기도 했다.
이러한 열정이 얼마만큼 녹아들었는지는 수치화 할 순 없지만 그는 어찌됐든 해남명예군민이 됐다. 전남도 교육청으로부터 감사패도 받았다. 그야말로 '소통하는 법원행정'의 롤 모델이 되어가고 있다.

곽 변호사가 이런 열정으로 새로움을 채워나가려 한 것은 그의 인생 역정과 맞닿아 있다.
기실 그는 ‘늦깎이 판사’로 출발했다. 그도 그럴 것이 광주고를 나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모든 게 수월하게 풀릴 줄 알았다.

그러나 이런 자만심은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꺾이고 말았다. 재경직 행정고시를 준비했던 그는 두 번의 도전에 실패한 뒤 방향을 튼다. 먹고 살아야 겠다는 생각에 취업을 했다. 지역 향토기업인 금호그룹에 입사했다. 1년을 근무한 뒤 뜻한 바가 있어 사법고시를 준비했다. 30살이 넘어서 다시 공부를 시작한 곽 변호사는 용하게도 합격해, 그것도 그의 나이 32세에 법관생활을 시작했다.

뒤늦은 법관 생활이 쉽지만은 않았을 거라는 말에 “그렇지 않았다”고 긍정적으로 대답했다. 오히려 나이가 많아 인사에 있어 덕을 봤다고 너스레를 떤다.

곽 변호사는 딸만 넷이다. 요즘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주말 예능 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 처럼 그는 송일국의 3둥이가 아닌 내리 딸 넷을 가진 아빠다.

그래서 “그것도 새로움에 대한 도전이냐, 아니면 어쩌다 그렇게 된거냐”는 애궃은 질문을 했다. “판사도 대한민국의 국민이다. 기본에 충실한 것 뿐이였다”고 답했다.
“남에게 감동을 주려면 자신이 먼저 새로움에 도전하는 열성과 진정을 보이고 스스로 감동해야 모든 게 풀린다”고 덧붙여 강조한다.

변호사라는 새로운 직업에 대한 도전이 그의 사무실과 책 표지 상단에 쓰여진 ‘희망은 언제나 있습니다’라는 말 그대로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사람’으로 이어질지 지켜본다. <광주뉴스통=박병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