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구청장 인사교류를 둘러싸고 광주시와 광산구간에 느닷없이 벌어진 행태를 지켜보던 공무원들의 자조 섞인 우려다. 행정은 합목적성과 영속성이 전제돼야 한다. 그리고 관행이 있다. 민선 자치시대 이후 쭉 내려오던 일종의 ‘약속대련’이었다.

그걸 무시하고 구민들에게 관심을 끌려고 옆 발질을 계속해댄다면 한번은 애교로 봐줄 수 있다. 하지만 더 이상 대립각을 세운다면 그 저의가 의심스러울 뿐이다.

민형배 광산 구청장의 행보가 그렇다.
그는 6일 기자회견을 했다. “탐욕과 야만의 '갑(甲)질'을 멈춰라“고 광주시를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윤장현 시장을 겨냥해서다. 민 청장은 "시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자치구를 식민지로 만들고 있다. 빗나간 인사 관행은 교류가 아니라 ‘착취’다. 자치구 젊은 공직자들을 ‘‘市바라기’로 만들었다”고 목소리를 높힌다.

한술 더 떠 시 고위직 관료들을 ‘장물아비’로 희화화 했다.
사상 초유의 일이다. 그것도 시의회에서 기자들 앞에서 윤 시장이 보란 듯이 한 것은 여간 찝찝하기만 하다.

법적으로 부구청장의 임용권이 해당 자치단체장에게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민선시대 이후 광주시와 구간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암묵적으로 유지해온 20여 성상의 관행을 일거에 깨뜨리는, 이른바 ‘돈키호테’식 돌출행보를 보인 것은 어떤 형태로든 바람직하지 않다.

따지고 보면 듣기에도 거북하고 감정대립으로 까지 번진 이번 인사파행의 단초는 민 청장이 제공한 거나 다를 바 없다.
민 청장은 사전협의 없이 서기관 직급인 4급 T/0가 2명 임에도 이를 무시하고 1명 더 늘려 3명으로 승진 의결했다.
그리고는 부구청장에 대한 광주시의 인사추천이 들어오자 이에 동의를 한 상태에서 또 다시 조건부로 민 청장이 이미 승진시켜 놓은 4급을 받아달라고 생떼를 썼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시 인사는 몇 차례 연기됐고 광주시 전체가 업무차질을 빚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돌아간 셈이다.

그런데 문제는 ‘구청장의 부단체장 임용’이라는 법적근거를 내세운 민 청장의 행동이 명분상 그럴싸하게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그건 ‘자신의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남의 눈의 티만 탓’한데 있다.

첫째는 광주시와 사전에 협의를 거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광주시와 구청 간 교류인사는 5개 구청과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기에 부구청장 인사에 앞서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
그러나 민 청장은 조건부 인사를 요구하면서 자신이 무리하게 승진시킨 인사를 주고 받자는 식으로 빅딜을 요청한 것은 공직사회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는 것이다.

둘째는 전국적인 틀에서의 인사 관행을 무시했고 형평성에 맞지 않는 대목이다.
광주시가 행정 부시장을 중앙으로부터 받아들일 때 안행부와 서로 협의를 한 것 처럼 타 시·도의 인사도 그런 관행 속에 이뤄져 왔다.
그럼에도 민 청장이 고의적이든, 아니면 다른 속내가 있었던지를 차지해두고라도 4급 1명 일단 승진시켜 놓은 뒤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못하겠다고 한 것은 겁박이나 다를 바 없다.
마치 자신의 그릇된 인사를 합리화시키려고 한 것과 다를 바 없다.
결국 타 시·도와의 형평도 전혀 고려치 않고 마이웨이를 고집한 셈이다.

셋째는 관행과 제도를 바꾸기 위한 충분한 논의와 설득을 거치지 않았다. 광주시는 몇 차례 인사를 연기하면서 민 청장에게 이번 부구청장 인사가 지연되면 승진 또는 전보 대상자는 물론이고 업무차질로 인한 후유증을 예고했다. 그런 만큼 이번 인사는 그대로 진행하되 추후에 5개 구청장이 한자리에 모여 논의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하지만 민 청장은 이를 무시하고 대화보다는 기자회견을 통해 윤 시장과 국장들을 싸잡아 비난하고 나섰다. 듣기에도 민망할 정도의 격한 발언을 쏟아내면서...

평소 논리적인 말로 구청직원들을 설득하던 민 청장의 이미지와는 다른 행동이었다. 그렇다면 민청장이 이렇게 작심하고 광주시와 각을 세우는 이유와 배경은 뭘까.
정치적으로 튀고 싶고, 자신의 주가를 높이기 위한 '전략적인 꼼수'라는 게 주변의 얘기다.

기실 민 청장은 노무현의 참여정부 임기 막판에 청와대에 들어갔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구청장으로 당선됐다. 단체장을 한번 하다 보니 더욱 정치적으로 크고 싶었을 게다. 차기 시장후보나 다음 총선에서 국회의원으로 출마할 거라는 소리가 간간히 흘러나오는 것도 그러한 맥락이다.

이번 새정치연합 전당대회에서 인천의 한 기초단체장이 최고위원 예비 경선(컷오프)를 통과한 것에 고무됐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래서 광주시당 위원장으로 도전장을 내려고 목하고민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때 마침 북구 출신 3선의 강기정 의원이 출마 뜻을 접었기에 아직 정치기반이 취약한 박혜자 의원(서구 갑)이 한번 해볼 만한 상대라는 것이다.

민청장의 이런 정치적 행보는 전국 단체장들이 지방분권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고, 새정치연합의 당권주자들이 시도당 위원장에게 힘을 실어주겠다는 시대의 흐름에 편승하고 있다.

일거에 3마리의 토끼를 잡겠다는 게 민청장의 속내다.
인천 남구청장처럼 최고위원은 아니지만 시당위원장에 나갈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전국 단체장 연합회장에 자연스레 거론될 수가 있다. 특히 윤 시장과 각을 세울 경우 다른 4개 구청장들이 자신을 지지할 수 있어 손해볼 게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단체장은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시민들을 담보해서는 안된다.
단체장은 선거를 통해 당선됐지만 굳이 말하자면 정치가가 아니고 행정가로서 시민들을 위해 모든 열정을 쏟아야 한다. 딴 뜻을 품게 되면 시민들이 불행해진다.

공교롭게도 오늘이 새정치연합 광주시당 위원장 후보 접수가 마감되는 날이다.
민청장의 행보가 시민을 위할 것인가, 아니면 정치적 목적을 위한 것인가에 촉각이 곤두서고 있다. <광주뉴스통=박병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