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감은 서리를 맞게 되면 상품성을 잃기 때문에 그 시기를 놓칠세라 바삐 서두르는 둣 싶다.

따 논 단감을 차에 실고 있는 과수밭 아저씨는 ‘좋은 그림이 되겠다’며 사진 한컷 찍자는 필자에게 이렇게 속내를 털어놓는다. 마음 같아서는 단감을 따지 않고 그대로 ‘까치밥’으로 남겨두고 싶다고...

작년에 이 밭에서 1천만원 어치를 수확했는데 올해는 풍년이 들어 생산비를 제하고 나면 200만원도 벌기 힘들다고 한숨을 내쉰다.

크기에 따라 단감 한 상자에 1만원~1만5천원에 불과하니 올해 단감으로 재미 보기는 ‘글렀다’는 표정이다.

동네로 들어가니 할머니들이 야산에서 수확한 감을 선별해 팔기 좋게 담고있는 모습이 눈에 띠었다. 많이 해본 솜씨여서 그런지 손놀림이 빨랐지만 표정을 그리 밝지 않았다.
많이 사가면 단감이 물러질 수 있으니 둘이서 한 상자를 사서 나눠가지면 좋겠다고 사정한다.

그 집 뒤뜰 감나무에는 가지가 휘어질 정도로 감이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
옛날 어릴 적 장독대 옆에 심어 둔 감나무가 생각난다.

주홍색깔로 주렁주렁 열린 감나무가 청량한 가을 하늘을 이고 있는 모습이 아스라이 떠오른다. 먹을 게 별로 없었던 시절이라 집집마다 한두 그루 정도의 감나무를 대개 심어 두었다.

“감나무 밑에 서 있기만 해도 건강하다”는 옛 말처럼 감나무는 먹는 것뿐만 아니고 잎사귀 까지도 이로워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해서 조상들의 아낌없는 사람을 받아온 게 사실이다.

감나무는 여름이면 그늘을 만들어 시원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가을 단풍이 아름답고, 열매가 먹음직스우며 낙엽은 좋은 거름이 된다는 데서다.

일 년 내내 먹거리도 제공한다. 어릴 적 간식으로 봄에는 감꽃을, 늦여름에는 땡감을 소금물에 우려낸 침시 감을, 가을과 겨울에는 홍시를 제공했고 더 나아가 제사용 곶감이나 감 장아찌, 감식초로 만들어 사시사철 먹을 수 있었던 과일이 감이다.
특히 홍시(紅柿)는 이(齒) 없는 노인도 먹을 수 있다고 해서 효(孝)를 상징한다. 영양분도 풍부해 당분과 비타민을 공급해준다.

단감은 우리에게 자연의 법칙을 교훈으로 주기도 한다.
병충해에 약한 나무는 상품이 되기 전에 저절로 떨어져 흙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병에 걸려 건강하지 못하면 그 동안 단단히 붙잡고 있었던 나뭇가지를 어쩔수 없이 놓아야만 되는 마지막 잎새의 운명처럼 말이다. .

하지만 나뭇가지를 놓지 않고 매달려 있으면 결국 까치밥 신세가 되고 만다. 일부 정치인이나 재벌가, 고위 공직자들이 권력, 명예, 돈, 지위를 자신의 손에서 놓자않으려 애쓰다 망신살을 당하거나 비참하게 종말을 맞는 경우를 많이 봐왔다.

때가 되면 저절로 떨어지는 단감나무의 진리를 보면서 자신이 붙잡고 있던 것을 놓아야 할 때와 물러나야 할 때를 스스로 알아야 까치밥 신세를 면할 수 있다는 얘기다.
흔히 욕심 많은 사람을 가르켜 ‘까치밥도 안 남겨두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비단 까치만이 아니라 온갖 새들이 날아와서는 주위를 살피다가 재빨리 감을 쪼아 먹곤 한다. 감은 이내 흠집이 나고 만다. 까치들은 혼자 먹기가 심심해서인지 아니면 굶고 있을 동무들을 생각해서인지 깍깍거리며 친구들을 불러들인다. 이내 서너 마리가 매달려서 한 잎이라도 더 먹으려는 듯 감 한 번 쪼아 먹고, 고개 돌려서 누가 잡으러 오지 않나 확인하고…. 그 모습이 재미있다.

시인 송수권은 ‘까치밥’에서 고향이 고향인 줄도 모르면서 긴 장대 휘둘러 까치밥 따는
서울 조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 까치밥 따지 말라/남도의 빈 겨울 하늘만 남으면/
우리 마음 얼마나 허전할까...‘’ ‘눈 속에 익은 까치밥 몇 개가/겨울 하늘에 떠서/아직도 너희들이 가야 할 머나먼 길/이렇게 등 따습게 비춰주고 있지 않으냐.’
<광주뉴스통=박병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