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는 지난 10일 헌재의 대통령직 파면 결정 이후 56시간만인 13일 저녁 청와대 관저를 떠나 삼성동 자택으로 돌아갔다. 2013년 2월 18대 대통령으로 청와대에 입성한 뒤 1천476일 만에 5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불명예 퇴진했다.

박근혜는 13일 저녁 자택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이 모든 결과에 대해서는 제가 안고 가겠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고 있다”는 내용의 말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헌재의 탄핵 인용 결정에 승복할 수 없다고 밝힌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이 발언은 민경욱 자유한국당 의원이 ‘입장문’을 대독한 것이다.

박근혜의 이같은 발언은 이날 자택 앞으로 마중 나온 친박계 의원 등에게 한 말을 민경욱 의원이 정리해 말한 것으로 보여 사실상 공식 입장도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는 박근혜가 앞으로 검찰 수사 등 사법 절차에서도 일부 극우보수층의 지지에 기대어 적극적으로 법적 투쟁에 나설 계획임을 시사한 것으로도 풀이된다.

청와대 퇴거에서 삼성동까지

청와대는 이날 오후 5시40분 "오늘 저녁 박 전 대통령의 청와대가 퇴거가 확정적"이라고 전했다. 오후 6시 출발로 예견했던 수많은 언론들은 해가 지기 전에 퇴거할 줄 알았던 그녀가 나중에는 30분 뒤인 6시30분 출발로 공식 통보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박근혜의 출발은 공지 시간보다 늦어졌고 결국 해가 지고 한참 뒤인 7시로 통보됐으나 이보다 10여분 이상 늦어져 오후 7시16분께 '20오 8206' 에쿠스 차량을 타고 청와대 정문을 출발, 삼성동 자택으로 이동했다.

카니발 차량 등을 포함해 6대가 박 전 대통령이 탑승한 에쿠스 뒤를 따랐고, 수행차량에는 허원제 정무수석, 배성례 홍보수석 등이 탑승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의 호위를 받고 출발한 차량은 20분 만인 오후 7시37분 삼성동 사저로 향하는 골목길에 도착했다. 박근혜는 차량에서 내려 마중 나온 전직 청와대 참모, 친박(친박근혜) 의원들과 ‘밝은 표정’을 지으며 악수를 나눴다.

이 자리에는 서청원 최경환 윤상현 조원진 김진태 박대출 이우현 민경욱 등 자유한국당 의원 8명과 이원종 이병기 허태열 등 박근혜를 보좌했던 전직 청와대 비서실장들, 김관용 경상북도지사 등이 함께 했다.

그녀는 승용차에서 내려 이들을 보더니 "이렇게 와 주셔서 감사하다"고 밝혔고, 자신을 마중 나온 지지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자택으로 들어가기 전 눈가에 맺힌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이날 인사에는 평소 박근혜를 ‘누나’로 부른 것으로 알려진 윤상현 의원이 시종일관 참석자들을 일일이 소개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박근혜의 공식 입장은?

박근혜는 지난 10일 헌재의 파면 결정 이후 별도의 입장 표명 없이 깊은 침묵을 지켜왔다. 이날 자택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이 모든 결과에 대해서는 제가 안고 가겠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고 있다"는 입장을 친박 의원 등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러한 인사를 나누고 박근혜가 자택으로 들어간 시간은 오후 7시45분께였다.

최초의 파면 대통령이라는 오점을 안고 4년여만에 청와대를 떠나 자택으로 돌아가면서도 앞으로 재판을 의식한 듯 자신의 잘못에 대한 입장은 밝히지 않은 채 사실상의 '불복선언'을 하는 자리였다.

민경욱 의원이 정리해 밝힌 4문장의 ‘입장문’은 다음과 같다.

“제게 주어졌던 대통령으로서의 소명을 끝까지 마무리하지 못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저를 믿고 성원해주신 국민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이 모든 결과에 대해서는 제가 안고 가겠습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고 있습니다.”

박근혜가 말하는 ‘진실은 밝혀진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잘못은 전혀 없다는 것인지, 헌재 결정이 잘못됐다는 것인지 구체적인 내용은 없었다. 2014년 통합진보당 해산이라는 헌재 결정에 대해서는 헌재의 정당한 결정이라는 입장이었던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었다.

박근혜가 자택 현관 문을 들어서자 문을 잡고 있는 남자?

박근혜의 ‘입장’에 대한 평가

중앙일보 이하경 주필은 이런 모습을 두고 자연인 박근혜를 지배하고 있는 감정은 억울함이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는다”고 했다. 기대했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고 칼럼에서 말했다.

이런 박근혜의 모습에는 세 가지 가설이 거론된다. 첫째는 무슨 잘못을 했는지 아직도 모르고 있다는 견해이다. 둘째는 헌재의 결정을 법률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뒤집을 수 있다는 망상적 믿음에 빠졌다는 주장이다. 셋째는 심리적 배신과 수치심. 청와대 퇴거 뒤 들이닥칠 검찰 수사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박근혜의 어젯밤 미소는 배신과 수치를 감추려는 뜻이라는 이야기다.

더불어민주당의 윤관석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내어 “박 전 대통령은 끝까지 자신의 국정농단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으로 보였다. 여전히 헌재의 탄핵 인용에 불복하는 마음이 있는 것 같아 충격적이고 대단히 유감스럽다”고 비판했다.

국민의당도 장진영 대변인 논평을 통해 “진실은 밝혀진다 운운하며 끝내 헌법재판소 결정에 불복한다는 태도를 취한 것은 깊은 유감”이라고 지적했다.

정인서 기자 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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